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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기사를 요약해보자면, '멀티플랙렉스 씨너스에서 발표한 계획인 본 영화 상영 전에 단편영화를 보여주는 건 관객이 원치 않는 영화를 강제로 보게하는, 일종의 계몽주의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니 단편영화는 본 영화 끝나고 틀어줘라-'는 겁니다.
그런데, 몇 달 전에 전 이 기사를 읽다가 잠깐 다른 생각이 났습니다. 바로 '극장들의 본 영화의 엔딩 크레딧 잘라먹기 관행'이었지요.
[궁금] 극장들, 요즘은 어떤가요? 계속 보기 클릭 " tt_lesstext=" " tt_id="1"> 2
호주에 지내는 동안 극장에서 영화보면서 가장 감동(?)했던 것 중 한가지는 영화가 끝나고 나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아무도 나가라고 재촉하거나 눈치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죠.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내 돈 내고 들어간 극장에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다니 저 스스로도 새삼, 참으로 놀랐지요.
언제나 감독과 배우 등 여러 제작 스텝들의 이름이 올라가고 나서 마지막으로 다시 영화사의 로고가 나올 때까지 아주 마음놓고 편하게 영화를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간혹 청소하는 직원이 들어와도 조용히 청소를 하고, 만약에 관객이 앉아있으면 그 근처는 관객이 나갈 때까지 청소를 하지 않고 기다리지요.
당연히 엔딩 크레딧을 잘라 먹는 일은 단 한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음악과 음향에 관심이 있어서 음악과 음향 스텝들의 이름이나 삽입곡 같은 것들을 보는데, 대체로 해당 스텝들은 엔딩 크레딧 중후반부에 나오잖아요. 당연히 편안하게 앉아서 확인을 합니다. (크레딧이 빨리 올라가니까 정확하게 볼 수는 없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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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국에선 제 경험으로는 극장에서 영화보면서 극장측에서 엔딩 크레딧을 잘라먹는 바람에 끝까지 보지 못하고 나오는 경우가 끝까지 보고 나오는 경우보다 훨씬 더 많았지요. (물론 예전보다는 조금 나아지긴 했지요. 조금.) 하물며 영화 중간에도 상영횟수를 늘리려고 극장측에서 알아서 가위질을 해대는 경우들 마저 '그럴 수 있는 일'이었는 걸요.
혹여 엔딩 크레딧을 자르지 않는 경우에도 어느덧 청소하는 직원들이 들어와 나가라고 눈치를 주니 그 불편함을 참지 못해 나가는 경우도 많았지요. (청소를 시끄럽게 한다거나, 앉아 있어도 '(청소해야 하니) 다리 좀 들어주세요-' 등의 요구를 한다거나, 자기네들끼리 시끄럽게 떠든다거나.)
즉, 시스터 액트 2 (Sister Act 2: Back in the Habit)의 Ain't No Mountain High Enough,
Deeper Love 같은 음악이나, 영화 봄날은 간다의 음악 봄날은 간다, 이터널 선샤인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의 Everybody's Gotta Learn Sometime 같은 음악들이 이제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제대로 들려질 기회를 무수하게 박탈당해 왔다는 것이지요.
왜 남이 만든 영화를 가위질하는 걸까요? 왜 영화를 끝까지 감상하는 것이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일인 걸까요? 영화의 내용은 가시적으로 끝났으니 누가 만들었는지 아는 건 중요하지 않거나, 음악감독 혹은 감독들이 만들고 선곡한 곡을 통해 영화의 마지막까지 여운을 가지고 감상하는 건 사치스러운 일인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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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호주에서 더욱 크게 놀란 일은 공중파 TV에서도 영화를 보여주고 난 후에 엔딩 크레딧을 자르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아- 사실은 저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겠구나...' 싶은 생각이 처음 들었지요.
새삼 왜 우리나라 공중파 TV는 엔딩 타이틀을 잘라 먹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잘라도 되는 권리가 있어서? 전파 낭비니까? 시청률 경쟁 때문에? 국민들이 엔딩 타이틀 보는 걸 원치 않으니까? 아무래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걸 지키는 게 기본 중의 기본 아닐까요?
그런데, 재밌는 건 거기도 편법(?)을 간혹 쓰긴 합니다. 엔딩 타이틀이 시작되면 화면을 분할해서 해당 채널의 다른 프로그램 광고를 하죠. 그리고, 영화 중간 중간 광고를 넣죠. 우리나라 케이블 TV 처럼 (일종의 toilet break, 화장실 타임~) 그래도 그 정도면 양반 아닌가 싶어요. 통째로 도려내진 않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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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돈 내고 극장에 들어가서 원치 않는 광고는 강제로 보지만, 정작 영화의 일부분인 마지막은 여유있게 감상하지 못한 채 혹은 아예 선택의 여지도 없이 극장 밖을 나서야 하는 상황을 겪고 있는데 기자분은 영화 시작 전에 단편영화를 상영하는 건 계몽주의적 생각에 부담스럽다고 하시니 혼란스럽더라고요. 영화 시작 전 광고들은 이미 관객의 선택권 없이 보여지고 있는데 그 이야기는 한마디도 안하시니 광고주의 입장을 관객 입장보다 더 우선시 하나 싶은 생각도 들고요.
그래서 든 생각이 이거였습니다. 요즘 극장들은 어떤가요? 엔딩 크레딧 끝까지 편안하게 볼 수 있는 환경인가요? 오늘 극장에 영화보러 갈 생각인데 직접 확인해 봐야겠습니다.
덧붙임)
일산 그랜드 백화점 안에 있는 그랜드 시네마에 가서 '친절한 금자씨' 보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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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딧 한 중간쯤 올라갈 때 직원이 들어오긴 했는데, 조용히 청소하고 나가라는 말도 하지 않더군요. 그런데, 그만 크레딧 후반부쯤 되니까 '턱-'하고 자르더군요. 음악도 당연히 함께 '턱-'. 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