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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ly cinema/movie letter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 언젠간 알게 되지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감독 : Michel Gondry
배우 : Jim Carrey, Kate Winslet, Mark Ruffalo, Kirsten Dunst, Elijah Wood, Tom Wilkinson

이 글은 영화를 보기 전에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지 않는 분들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예전 내 홈페이지 메뉴 중에 '그녀와 그가 하는 이야기'라는 꼭지가 있었어 - 기억나? 2001년 12월 21일에 적은 그 꼭지의 첫번째 글은 다음과 같았지.
그 : 신기해.

그녀 : 뭐가 ?

그 : 가끔씩 꿈을 꾸는데, 내가 너를 알기 이전의 기억과
네가 함께 뒤섞여서 나와. 그건 무슨 의미일까.

그녀 : 글쎄, 그건 그냥 꿈이잖아. 뒤섞일 수도 있는거지, 뭐.
꿈속에 연예인이나 유명인이 나오는 경우도 많잖아.

그 : 하긴, 그런데, 이 경우는 참 묘한 느낌을 줘.
뭐랄까, 네가 내 기억 속에 조금씩 자리를 잡는 느낌이랄까.
조금씩 조금씩 일상과 기억이 잘 반죽되어지는 그런 느낌.

그녀 : 그거 좋은 뜻이야 ?

그 : 물론 !

어떤 사람과 가까워지면, 그리고 그 사람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면 기억은 엄격해지지 않는 경우가 있어. 위에 적은 것처럼 그 사람과 함께 하지 않았던 경험들도 함께 했다고 기억하고, 내가 그 사람을 만나기 이전부터 그 사람을 알고 있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해. 물론, 모든 사람에게 그런 건 아니야. 그런 느낌을 주는 사람들이 있지.

그런 사람들은 살면서 나에게 영감을 줘. 연결되어 있는 느낌. 때로는 혼자서 곰곰히 생각해 보는 과정에서 아무 말 없이 해결책을 제시해주기도 하고, 가만히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지. 심지어 내 가장 부끄러운 부분까지 이해해주고, 다투고 있을 때조차 한편으로 안심하게 만들거든.

영화 속에서,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린 여성들에게 사랑을 가장한 채 접근하는 남성들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해. 신기하지? 그녀들은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똑같은 반응을 보여주는 사람들을 경험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달콤한 감정을 느끼고 어떤 사람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받지 못해.

결국 영화는 Jane (Kirsten Dunst 분)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더 큰 에너지를 만들어내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건, 기억을 지우는 것 따위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사실 말이지. 결국에 만날 사람들은 언제고 다시 만날 수 밖에 없다는 것 - 동양적인 정서로 말하자면 '인연'인 거지. 기억을 지우고 새롭게 태어난 두 사람이 다시금 서로를 찾게 된다는 것.

재밌는 건 'I'm not an impulsive person' 이라고 이야기하던 Joel (Jim Carrey 분)은 그녀가 자신의 기억을 지웠다는 사실에 충동적으로 기억을 지우고, 'You know me. I'm impulsive'라고 이야기하는 Clementine (Kate Winslet 분)은 오히려 Joel의 머리 속에서 그녀를 잃을까 두려워하는 Joel을 다독거린다는 점이야.

머리 속을 휘집고 돌아다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Charlie Kaufman은 이미 Being John Malkovich에서 보여줬지만, 이번 이야기는 왠지 결말을 서둘러 맺은 듯한 느낌이 들어서 좀 아쉬웠어. 런닝타임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이야기를 더 이상 진행시키기에 힘이 들었던 걸까. 하긴 뭐, 중요한 건 결말에 있는 게 아니라 과정에 있었으니까.

그래도 괜찮아. 영화 속에서 Joel과 Clementine이 갑작스럽게 서로를 인정한다고 해서 모든 게 해결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이젠 그런 환상은 더 이상 꿈꾸지 않으니까. 중요한 건 결말에 있는 게 아니라 과정과 노력에 있으니까.

As the lyrics of the song in the end of the movie, Everybody gotta learn sometime.

평점을 주자면 별 다섯개에 네개. Charlie Kaufman의 힘은 대단하여라.

20040913 by mysel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