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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ly cinema/talk about movie

The Final Cut - 프라이버시와 기억

이 영화는 마치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을 떠올리게 하는 '편집자의 규범'을 영화의 초반에 보여주며 시작한다. 또한 영화는 전체적으로 필립 K. 딕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SF 소품이면서 여러가지 설정들이 독특한 점에서 특히 그렇다.

The Cutter's Code

i. A Cutter cannot sell or give away Zoe footage.
ii. A Cutter cannot have a Zoe implant.
iii. A Cutter cannot mix Zoe footage from different lives for a Rememory.

편집자의 규범

i. 편집자는 조이 기록을 팔거나 폭로할 수 없다.
ii. 편집자는 조이를 (스스로의 몸에) 심을 수 없다.
iii. 편집자는 의식 (rememory)을 위해 조이 기록을 다른 이들의 기록과 섞을 수 없다.

어느 미래에 사람들은 조이 (Zoe)라는 삽입물을 자신의 몸 안에 넣을 수 있다. 엄밀히 말하면 자신의 부모가 그들의 아이들에게 넣는 것. 이 조이는 죽을 때까지 그 사람의 모든 걸 동영상으로 기록하고 있다가 죽고 나서는 편집자 (cutter)라 불리는 사람들에 의해 편집되어 장례식과 비슷한 rememory라는 의식에 쓰여진다.

앨런 (로빈 윌리엄스 분)은 의뢰자의 입맛에 맞춰 편집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졌고 그 때문에 대체로 부패한 거물급 인사들의 조이를 편집하는 편집자인데, 어렸을 때 자신의 결정적 실수로 친구를 죽였다는 생각에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어느날 그는 이 조이를 개발한 회사 아이-테크의 변호사 찰스 배니스터의 조이를 편집하게 된다.

한편에서는 모든 걸 기록하는 조이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 바로 안티 조이 운동가들. 그들은 부패했음이 분명한 찰스의 조이를 이용하여 아이-테크사를 무너뜨리려고 한다. 예전에 앨런의 조수였던 플래쳐 (짐 카비젤 분)가 앨런을 쫒게 된다.

이 영화에서 2가지가 관심있게 느껴졌다.

1 프라이버시

기술은 언제나 현재의 법으로 통제할 수 없는 방향의 발전을 이뤄낸다. 윤리와 도덕, 법은 그 이후에 정리되고 강화된다. 또 한편으로 보자면 아무리 보안이나 법을 강화한다고 해도 그 정보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단체나 개인의 윤리성만큼 중요한 건 없다.

전자신문에 모든 휴대폰에 위성위치확인(GPS) 탑재를 의무화하는 방안이 추진된다는 기사가 실렸다. 이것 말고도 전자주민증이나 개인의 신용 등급 관리 등 여러가지 추세들을 보면 영화에서만 보던 빅 브라더, 정부(보이지 않는 힘)의 통제 등이 점점 현실화되어가는 게 느껴진다.

영화 속에서 안티 조이 운동가들은 시위를 한다. "Live For Today, Remember For Yourself" 그들은 오늘을 위해 살고, 스스로를 위해 기억하라는 피켓을 들고 조이에 대한 반감을 드러낸다. 이 조이에 대한 문제는 이렇다. 나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데 혹은 나는 촬영되고 싶지 않은데 다른 사람에 의해 촬영된다면? 이건 오늘날 몰래카메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

rememory와 같은 행사에서 공개적으로 상영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조이들이 유골처럼 보관된다면 더 큰 침해들이 일어날 수 있다. 국가가 혹은 어떤 목적을 가진 단체가 공공의 목적 (혹은 사적인 목적)을 위해 이 기억들을 요구한다면 말이다.

2 기억 혹은 진실

누군가에게 진실은 누군가에게 거짓일 수 있다. 모두들 서로 자기 입장에서 과거를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진실은, 사실은 무엇일까? 심지어 비교적 객관적인 매체라 할 수 있는 영상과 소리로 기록된 자료들도 시간에 따라 진실여부가 변하기도 하는데 말이다.

영화 속에서 앨런이 편집한 고인의 기억이 사람들에게 상영되고 난 후 고인의 친구 하나가 그 영상에 의심을 제기한다. "당신이 그 낚시보트의 색깔을 녹색에서 빨간색으로 바꾼 거요?" 앨런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 편집자가 고의로 보트의 색깔을 수정하고 거짓말을 하거나, 그 친구는 평생 친구인 고인과의 기억을 잘못 기억하고 있거나.

하지만 둘 다 아니라면 어떨까? 앨런은 아무 것도 편집하지 않았으며 고인의 친구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을 수 있다. 즉, 고인의 기억이 잘못 되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고인이 색맹일 수도 있고, 고인이야말로 평생 그렇게 기억하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영화 속에서는 상상만으로도 조이에 기록이 남는 경우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 영화는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갖고 있는 영화다. 오리지날리티는 조금 부족하더라도 비교적 재밌을 만한 부분이 많이 있지만 그게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가 하면 / 미장센 또한 나쁘지 않으나 SF적인 소재를 잘 반영하지 못하는 것 같고 / 진실은 밝혀지나 그게 좀 맹맹하고 / 로빈 윌리엄스의 연기는 괜찮으나 미라 소비노 같은 캐스팅은 그리 잘 된 것 같아 보이지 않는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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