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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ly cinema/talk about movie

Syriana - 이런 무시무시한 백혈구 같으니라고!

aka 시리아나

우선, 이 영화는 굉장히 불친절한 영화이다. 스티븐 개건 (Stephen Gaghan) 감독이 각본을 맡았던 영화 <트래픽>처럼 서로 다른 이야기가 별다른 설명없이 전개되는데, <트래픽> 때 처럼 색깔로 구분해주지도 않는다. 그러니, 국제정세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사전지식 없이 본다면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는 영화가 되기 십상이다.

심지어 다른 영화들과 달리 이 영화는 줄거리를 대충 알고 보는 것도 괜찮다. 이 영화의 원작은 전직 CIA 요원이자 작가인 로버트 베어 (Robert Baer)의 책 "See No Evil: The True Story of a Ground Soldier in the CIA's War on Terrorism , Crown"인데, 소설이 아니라 회고록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전혀 은유적이지 않을 뿐더러 감독과 배우가 보여준 그간의 행보로 보아 다른 해석을 원치도 않는 것 같다. 이 영화는 미국의 그간의 행보를 비판하는 정치적인 영화이며 미국의 말도 안되는 전쟁의 이유가 석유 때문이라는 걸 분명하게 전달하는 영화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보나마나 뻔한 재미없는 영화일까? 내가 보기엔 그렇지 않다.

초반부에는 별다른 설명도 없고 큰 사건도 없이, 심지어 인물들끼리의 만남도 없이 진행되어 지루하기도 하지만 영화는 후반부로 치닫을수록 각각의 사건들의 공통점들이 발견되면서 어떤 인물들은 분노하고, 어떤 인물들은 포기하고, 어떤 인물들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들이 극적으로 표현된다. 마치 영화의 태그라인처럼. Everything is connected.

중요한 장면일수록 음악은 미니멀하게 쓰이고 사운드는 튀지 않고 뒤에서만 머물거나 심지어는 조용해지는데 그 억누름이 오히려 인물들의 분노 - 심지어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분노까지 느끼게 해준다.

음악은 알렉상드르 데스플라 (Alexandre Desplat, 프랑스)가 맡았고, 이 영화로 골든글러브에 노미네이트 되었으나 수상은 하지 못했다. 그러나, 제55회 베를린국제영화제 (2005)에서는 <내 심장이 놓친 박동 (De battre mon coeur s'est arrêté)>으로 음악상 수상. (그가 작업한 작품 중 최근에 국내에서 유명한 작품으로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Girl With A Pearl Earring)>가 있다.) (아! 그리고 개인적으로 니콜 키드만 주연의 <탄생 (Birth)>의 음악도 인상적이었다.)

영화를 보며 살짝 떠오른 생각들.

1 우리나라의 개화기를 상상해보았다. 그 때도 미국이나 일본, 러시아 등에서 우리나라를 좌지우지 했겠지 -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그리고, 정체된 발전과 타락한 관료와 무지한 백성을 걱정하며 순수하게 개화를 하려는 사람과 그걸 이용해 이득을 보려는 나라들이 있었겠지. 중국은 덩치가 커서 미국 맘대로 잘 안되고는 있지만 요즘의 중동을 보면 왠지 우리나라의 개화기 때가 상상된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인가?



2 언젠간 그들도 터번을 풀고 거대 마트에 가서 서양식 식재료를 사다가 먹을까? 그들의 아이들도 맥도널드와 코카콜라로 대표되는 서양의 음식 (패스트푸드) 때문에 그들의 전통음식을 싫어하게 될까?

중동 지방은 우리와 달리 워낙 거대한 커뮤니티라 그런 변화가 쉽게 오지는 않겠지만, 미래가 되어 석유가 떨어지는 때가 온다면 그 땐 어떨까? 그동안 제대로 된 발전없이 지금처럼 미국을 비롯한 몇몇 나라에게 끌려다니는 행보를 계속 해왔다면?



3 백혈구가 몸속 세포들에게 이야기한다. "외부 세포들은 위험해. 내가 지켜줄게. 내가 싸울게." 그래놓고 평화롭게 사는 우리 몸속 세포들을 공격한다. 그게 백혈병이다.

전 세계에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기독교를 전파하며 비효율과 불합리, 모호함을 타파하자고 하면서 스스로는 전세계를 불안하게 만들며 거들먹거리고 돌아다니는 미국의 꼴이 백혈병의 그것과 어찌 그리 똑같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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