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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ly cinema/small talk

'정성일의 영화 두 배로 재밌게 보는 법'에 대한 짧은 잡담

영화평론가 정성일은 1993년 2월 7일 <정은임의 영화음악>에서 영화 두 배로 재밌게 보는 법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인터넷에 오래 전부터 떠돌던 글이기도 한 (그만큼 유명한) 이 글을 오밤 중에 읽고 갑자기 드는 몇 가지 생각.


정성일 : 두 번째 조항, 영화 자막 끝까지 읽기. 이건 아마 한국에선 거의 불가능한 일 중에 하난데요. 그것은 무식한 그 영화관 영사 기사와 관객들이 야합한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앉아 보십시오. 뒤이어 다음회 손님이 달려와서 내자리 왜 안 비키냐고 눈에 도끼질하기 일쑤입니다. 그러니 무서워서 어떻게 앉아 있겠습니까? 그러나 비디오 때문에 이제는 가능해졌습니다. 그리고 스텝과 캐스트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가끔 아주 의외의 이름이 등장해서 영화를 풀어낼 수 있는 열쇠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출처: <정은임의 영화음악> 1993년 2월 7일 방송

개인적으로는 두 배로 재밌게 보는 방법이기에 앞서 이건 영화를 제대로 보는 정도의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이건 13년이 지난 2006년 3월 현재도 여전히 요원한 일. 언제쯤이나 가능할까? 과연 언젠간 가능해지긴 할까?

스크린쿼터를 외치는 영화인들이 스크린쿼터가 잘 해결되고 난 후에 앞으로 이런 것들에도 한번씩 발언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당장 해도 되고). 스크린쿼터가 사라지든 영화 뒷부분을 짤라먹든 별 상관없는 건 극장주들이겠지만, 스크린쿼터도 영화의 마지막 부분도 감독, 배우 이하 모든 스탭들에게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해볼만 할 것 같은데.

예를 들면 유명한 배우나 감독이 잡지라든가 인터넷 매체와 인터뷰하다가 이런 식으로 한마디씩 하는 거지. "OO극장은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데요,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있거든요. 엔딩 크레딧 중간에 영사기를 끄지도 않고요, 중간에 직원들이 달려들어 청소하는 일도 없어서 너무 좋아요." 어설픈 PPL 하느니 이런 게 훨씬 먹히지 않을까? 이 정도면 영화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공익광고다. 극장들이 이런 걸로 경쟁하면 좋겠다.



정성일 : 10명중 5.7명이 자막을 읽지 않는다고 대답했습니다. 이것은 세계적인 추세인데요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는 유난히 이야기가 복잡한 영화보다는 액션 영화가 성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관객을 무시하고 엉터리 번역으로 관객을 종종 혼란에 빠트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겁니다. 아주 고전적인 예로는 우리 나라에 그 수입된 졸업에서 수입을 통과하기 위해서 앤 랜크러프트가 캐서린 로스의 어머니가 아니라 갑자기 이모로 오역된 경우는 대표적인 경우지만 최근에도 숱한 예가 있습니다. 어퓨굿맨의 경우는 심지어 '이다'가 '아니다'로 되어 있고 속어가 순화되는 바람에 악당의 성격을 종잡을 수 없고, 원초적 본능처럼 미스테리를 더 미스테리로 만들어 버리기가 일쑤이고 바톤 핑크는 아예 개작을 한게 아닐까 생각될 정도고 화면에서는 계속 이야기하고 있는데 자막은 그저 2줄 나오고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정은임 : 그렇죠. 이런 경우도 봤어요. 'Fuck You'라는 욕이 있잖아요. 그걸 '뻐꾸기'라고 번역하는 경우도 많이 봤어요.

정성일 : 그런데 문제는 이 경우가 더 문젭니다. 이런 경우는 도대체 어떻하겠습니까? 만일 등장 인물이 '확실히'를 갖다가 줄기차게 '학실히'라고 발음할 때는 그것은 감독은 다른 의도가 것입니다. JFK에서 케빈 코스트너의 억양이 로빈훗, 꿈의 구장, 늑대와 춤을과 다 다른 영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 어퓨굿맨에서의 잭 니콜슨의 악센트가 배트맨의 악센트와는 전혀 다릅니다. 그걸 알 길이 없으니 관객들은 등장 인물의 성격을 그저 이야기를 통해서 추론할 뿐입니다. 케빈 코스트너가 아카데미상을 못 받는 이유는, 첫 번째, 그 연기보다는 그 인물의 성격을 표현하는 엑센트가 바로 안되기 때문입니다. 한 번 로버트 드니로의 좋은 친구들과 미션과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와 디어 헌터를 빌려서 보십시요. 완벽하게 다른 영어를 구사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지금 헐리우드에서 가장 잘 사용하는 배우는 메릴 스트립이라 합니다.

출처: <정은임의 영화음악> 1993년 2월 7일 방송

송X헌, 김X선 등의 몇몇 배우가 한류 열풍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것에 대한 궁금증이 이제야(-_-) 풀렸다고나 할까?

그러니까, 중국과 동남아시아 관객들의 연기를 보는 시각이 (막말로 그리고 당연히) 우리보다 후진 것도 아니고, 우리보다 후한 것도 아니라는 것.



故 정은임씨가 방송 마지막에 정리를 한다.

정은임 : 자, 조금 전에 영화계의 고수 영화 평론가 정성일씨가 비법 10가지를 정리해 주셨죠. 영화를 재미있게 보는 법. 간략하게 정리해 드릴까요.

1. 한 영화를 두 번 이상 보기.
2. 자막을 끝까지 읽기.
3. 한 감독의 뒷 영화를 보고 앞 영화를 다시 생각하기.
4. 영화에서 카메라를 발견하기.
5. 영화에 숨어 있는 감독의 뜻을 집어내기.
6. 번역은 믿지 말 것. 여러분이 되도록, 될 수 있으면 한 번 듣는 습관을 가져 볼 것.
7. 좋은 영화는 시간이 흐른 뒤 다시 한번 볼 것.
8. 평론가는 참고서라고 생각할 것.
9. 영화는 그 영화를 평가하는 것은 바로 관객, 여러분이라는 사실을 명심할 것입니다.

출처: <정은임의 영화음악> 1993년 2월 7일 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