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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ly cinema/movie letter

범죄의 재구성

범죄의 재구성


감독 : 최동훈
배우 : 박신양, 백윤식, 염정아, 이문식, 천호진, 박원상, 김상호

고등학교 3학년 어느날 기숙사에서 친구들하고 고스톱을 친 적이 있었어. 점당 10원. 각각 1,000 ~ 2,000원 가량씩 꺼내놓았고 인원은 5명이었던 걸로 기억해. 한명이 판을 완전히 쓸다시피 해야 간신히 동네 분식점표 철판볶음밥을 먹을 수 있는 금액이지.

어찌어찌 하다보니 내가 판을 거의 다 쓸게 되었어. 애들이 마지막으로 세판만 더 치자고 하는 거야. 그래서, 속으로 '세판 정도 치면 다 쓸어버릴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도 들고 해서 그러자고 했지. 그런데, 마지막 세판에 그 때까지 딴 돈을 다 잃고 간신히 본전만 찾게 되었어. 거의 밤새도록 쳤는데 말야.

사실 난 도박을 하면 돈을 잃는 편이야. 그냥 장난으로 - 돈을 안걸고 하면 꽤 잘 이기는 편인데, 막상 돈을 걸거나 진지하게 시작하면 성적이 안좋아. 장난으로 할 때랑 진짜로 할 때랑 다른 게 뭘까.

최창혁 (박신양 분)과 김선생 (백윤식 분)은 사기가 심리전이라는 걸 알고 있어. 사기란 돈 있는 사람을 쫒아다니며 뒷통수를 쳐서 돈다발 뺏어내는 게 아니라 돈 있는 사람이 제발로 찾아와서 갖다 바치게 만드는 상황을 만들어 내는 거라는 거지.

이런 류의 영화들을 보면서 얻은 교훈이 있다면 - 그리고 그게 영화 속에서도 고스란히 장르로써 재현되는데, 자존심, 욕심, 분노, 기쁨, 사랑 등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면 '게임'에서는 지는 것 같아. 적어도 룰이 공정하고 실력에 아주 큰 차이가 있지 않다면 그 이후엔 '심리전'이거든.

예전에 Six Senses나 Usual Suspect 같은 영화들을 홍보할 때면 기막힌 반전이 있다면서 그걸로 사람들 호기심을 자극했잖아. 그 때마다 느낀 건 다들 그 '반전'을 안 밝히고 홍보하기 힘들겠다 였는데, 이 영화도 그러고 보니 반전이라면 반전이 있긴 하네. 홍보사의 재치라고나 할까?

이 영화 말야, 영화 잡지들마다 영화 사이트마다 띄워주더라구. 마치 예전에 '고양이를 부탁해'나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띄워줄 때 처럼 말이지. 사실, 그래서 영화를 보기 전에 이 영화도 흥행성은 떨어지나 싶었어. 평론가들이 괜찮다고 이야기하는 작품 중에 대중들에게 거부감이 느껴지는 작품들이 왠만큼 많아야지. 그런데, 이 영화 잘 하면 뜰 것 같아.

그런데 말야. '태극기 휘날리며'가 헐리우드를 따라하면 헐리우드에 대한 컴플렉스고, '범죄의 재구성'이 헐리우드 장르영화를 따라하면 장르의 재구성인가? 물론 한국적인 요소를 잘 가미시켜 괜찮은 장르영화 나왔다고 하지만, 그 논리는 '태극기 휘날리며'에도 비슷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거지.

솔직히 음악이 좀 깨긴 깨더라. 우리나라에 이런 류의 영화가 없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싶으면서도 감독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구로동 샤론스톤 (염정아 분), 얼매 (이문식 분), 휘발유 (김상호 분), 김선생 등 한국적(?) 캐릭터들과 한국적(?) 시추에이션들에 어울리지 않을 때가 많더라는 얘기.

평점을 주자면 별 다섯개에 세개 반. 드디어 염정아도 자기에 맞는 캐릭터를 찾았다.

20040415 Cine City with Coon

(with nK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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