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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ly cinema/movie letter

태극기 휘날리며

태극기 휘날리며


감독 : 강제규
배우 : 장동건, 원빈, 이은주, 이영란, 공형진

언젠가 형과 함께 술을 먹는데 어쩌다가 어린 시절 이야기가 나왔지. 어렸을 때 난 굉장히 형이랑 놀고 싶었지. 그런데, 형은 자기 친구들이랑 노는데 내가 끼면 제대로 놀 수 없으니 언제나 나랑 놀기 싫어했어. 내가 형이었다고 해도 그랬을 것 같아. 친구들이랑 노는데 동생을 데려가는 게 흔한 일은 아니지.

딱 한 장면이 제일 생생히 기억나는데, 형이 외출 준비를 했어. 옷을 갈아입고 있는데, 내가 막 울면서 형이랑 같이 나가고 싶다고 했지. 당연히 형은 안된다고 하고 어머니는 왠만하면 데려가라고 하고, 그렇게 실랑이를 하다가 알았다고 하고 나랑 같이 나갔어. 그런데, 나가자 마자 나를 보면서 '너 따라오면 알아서 해-' 라고 하고는 뛰어가는 거야. 그래서 그냥 집에 들어왔던 기억.

술 먹으며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느낀 건데, 형은 나에게 그런 것들, 오랫동안 많이 미안해하며 지냈더라구. 따져보면 20여년쯤 되는데 - 그 동안 동생인 나는 그 때 기억 거의 하지 않고 지내왔는데, 형은 종종 미안해하고 신경쓰며 지낸 거지. 그게 형의 마음 아니겠어?

진태 (장동건 분)는 진석 (원빈 분)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야. 동생을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공을 세우려고 하지. 훈장을 타서 동생을 전역시키려고 말야. 물론 그의 의도대로 되지는 않지만. 그런 와중에 동생은 형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영화 전개상 좀 뭉클했었는데, 그건 형제애 때문이 아니라 부정(父情) 때문이었어. 진석에게 진태는 형이 아니라 아버지였던 거지. 정말로 아끼면 이름뿐인 역할은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아버지 같은 형, 어머니 같은 누나, 인생의 친구 같은 어머니, 스승 같은 아버지... 때에 따라 필요한 역할이 되어 서로를 보듬을 뿐이라고 생각해.

제작비를 아주 효과적으로 쓴 영화라는 생각이 보는 내내 들었어. 총격씬이라든지, 전투씬에서 근접촬영을 하며 카메라를 흔들어댔던 가장 큰 이유는 제작비 부족과 노하우 부족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어지러운 화면들이 많았거든.

감정의 흐름이 부분부분 튀고, 주연급 캐릭터들도 상당히 평면적이고, 특수효과도 아쉬운데도 불구하고 (특히 그 비행기 폭격씬 !), 천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본 이유는 뭘까. 주연배우들의 스타성? 강제규의 네임벨류? 배급력? 막대한 제작비? 한국적 소재? 이런저런 이유가 섞여 있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감독의 연출력이나 배우들의 연기력이 큰 비중을 차지할 것 같지는 않아.

평점을 주자면 별 다섯개에 세개 반. 길은 한 길이 아닐터이니, 강제규 감독님- 헐리우드 따라잡는데 너무 급급해하지 마시길.

20040211 대한극장 with litmus, Julius

(with nK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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