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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ly cinema/small talk

"씨네21, 정성일의 '괴물' 영화읽기"를 읽고...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씨네21 565호 (2006.08.08 ~ 2006.08.15)에 실린 전영객잔 - 노골적이고 단호한 정치적 커밍아웃 (정성일 글) (아직 온라인에 올라오지 않았다. 아직? ... 올라올지 안올라올지 모른다. 온라인에 올라왔다. 아래 링크 걸어둠.) 이란 글을 읽고 떠오른 생각 몇가지. 그리고, 질문 덩어리.

-. 마치 교과서에 줄을 치며 정독을 하듯, 정성일이 영화를 꼼꼼하게 짚어가며 평을 하게 만는 봉준호 감독은 어떤 면으로든 대단하다. (어쨌든, 씨네21도 대단하다.)

-. 이번 평은 읽는데, 왠지 레디앙의 기사를 읽는 듯한 느낌이었다. 문체도 그러했고, 정치성을 역설하는 내용을 보니 그랬나보다.

나는 정확하게 <괴물>의 거기까지만 지지한다. 그러므로 나는 이 글을 여기서 멈춘다. (하지만….)

-. 이 글의 마지막에 두 문장은 위와 같다. 왠지 2탄이 나올 것 같다. 566호에 나올까, 567호에 나올까. '하지만'의 뉘앙스를 보아하니 두번째 글(이 나온다면 그 글)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을 듯 하다. 모든 의미로 다음 글이 기다려진다.

-. 감독의 최종 결정이 끝난 영화에도 영화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건 - 살을 붙여주는 건 역시 평론가와 관객이다. 이건 물질적 (관객수, 홍보, 돈!)인 면에서도 그러하며 정신적인 면 (관객과 소통하든지 평론가와 소통하든지)에서도 그리하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새삼 정성일이 열심히 모셔온(?) 임권택 감독이 행복한 사람으로 느껴졌다. 그렇다면, 김기덕 감독은 어떨까.

-. 김기덕 감독이 국내 개봉을 하지 않겠다는 이야기에 말들이 많은데, 우선 '문화의 다양성'이란 측면에서는 참 안타깝게 생각한다. 하지만, 새삼스럽게 여러가지 면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 한국 감독이 한국인 배우들과 한국말로 대사를 하는 영화를 만들면 한국 영화인가? 모든 것은 한국사람들이 한국식(?)으로 만들지만 자본이 외국자본이면 그건 외국영화겠지? (자본주의)

▶ 영화는 '종합예술'이기 때문에 언어를 넘어선다고 하지만, 하지만 인간의 상상력과 판단력, 행동패턴은 상당히 언어에 종속적이지 않나?

▶ 외국에서 인정받고 상 받으면 예술영화일까? 프랑스 무슨무슨 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면 수준 높은 영화인 건가? 개고기 논쟁을 여기에 들여오면 비약이 심한 걸까?

▶ 그러니깐, 다음 영화를 위한 펀딩을 잘 받는다거나 (앗- 여기도 자본!), 지금 개봉하는 영화의 홍보에 도움이 되는 사실 말고 정말 그 영화가 잘 만든 영화로 인정 받는 건가? 외국의 유명한 평론가의 평으로? 혹은 이름 모를 어떤 기자의 박수로?

▶ 아무리 뛰어난 예술가라도 당대에 인정받지 못하는 예술가들의 생애들은 많이 회자되어 왔다. 동시에, 아인슈타인도 20세기 후반 혹은 지금의 한국에서 자란다면 평범한 회사원보다도 못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 하는 우스갯소리도 떠오른다.

▶ 그렇다면 불운한 삶을 살다가 죽은 천재 예술가들을 오랜 시간 꾸준히 만들어낸 유럽의 문화도 그리 신뢰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왜 우리는 그들의 '문화를 판단하는 잣대'를 원하는 거지? (이 때, 등장하는 <한반도>의 태그라인 : 우리는 한번도 이 땅의 주인인 적이 없었다. 두둥)

▶ 지금 관객의 수준(!)이란 건 어떻게 해야 올라갈 수 있는 것일까? (올라간다는 표현이 맞나?) 영화언론 (미디어 혹은 평론가들)이 생각하는 '고질 (高質)'이란 어떤 것일까?

▶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에는 무엇이 있을까? 아니, 우리의 목적은 무엇인가? 아니, 우리란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