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ovely cinema/small talk

짧게: 구타유발자들

aka Bloody Aria


- 생각해보면 군대에서의 (육체적, 정신적) 폭력이 그리 힘들지 않았던 이유는 이미 중고등학교 때 직간접적으로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운동부 친구들, 주먹 쓰는 친구들 (물론 나야 그 쪽, 즉 육체적인 폭력엔 주변인에 불과했지만). 마찬가지로 영화 속에서 웃으면서 때리는 장면들, 웃으면서 갈구는 장면들이 별로 역겹거나 충격적이진 않았다. 오히려 사실감이 느껴지고, 분위기 잘 잡히고 연기는 잘한다고는 느꼈지만.

- 폭력의 고찰이라는 소재가 샘 페킨파의 <지푸라기 개> (Straw Dogs)부터 떠올리게 하면서도 그와는 여러가지 면에서 다른 영화이다.

- 그런데, 영화 속에서 "구타유발자들"은 누구일까? 왜 제목이 <구타유발자들>일까?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전혀 모르겠다. -_-a 그러니까 그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 구타유발자가 있다는 건가? 혹시 그렇다면 굉장히 껄끄러운 제목이고 껄끄러운 시선이다.

- 원래부터 그런 색감을 의도한 걸까? 보는 내내 좀 답답했다. 자연스러운 창백함이 주는 음습함이 아니라 과도한 후보정의 느낌.

- 등장인물 이름이 상징적으로 쓰여진 우리나라 영화들은 보기가 힘든데 이 영화에서는 잘 쓰였다고 생각했다. 한석규가 맡은 전직 동네 양아치 출신 경찰의 이름은 문재. 김시후가 맡은 제대로 사고치는 왕따 고등학생 이름은 현재 (문재의 동생). 문재와 현재 >> 문제와 현재. 오래전에 유발되어 전해 내려오는 (폭력이라는) 문제를 그대로 몸으로 받아들이며 결국은 폭력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된 현재. 한국판 <폭력의 역사>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 작품)이다.

- 코미디는 약했고, 결말도 약했다. 코미디가 약한 건 상관없지만 '가는 김에 확- 더 가버렸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마지막의 훈계 (혹은 신파)가 보통의 한국영화들보다는 덜 친절해서 좋았다.

- 사운드는 굉장히 심플하면서도 효과적으로 입혀졌다. 특히 특징을 잡아 패닝에 신경 쓴 부분들이 좋았고 키스신의 쩝쩝거림도 재치있었다(^^). 음악의 쓰임새 역시 좋았는데 전반부의 오페라가 분위기 반전의 도구로 사용된 것도 좋았고, 영화의 진행 내내 사물놀이풍의 사운드트랙이 깔려 마당극의 모양새를 분명하게 드러낸 것도 멋진 센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