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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view & mind

불량품 0%의 신화 - 때려서라도 끌고 가는 시스템

교사의 체벌? 폭행!

요 며칠 전에 아이에게 책을 던지는 등 체벌이라고 볼 수 없는 폭행을 가한 교사의 동영상이 인터넷에 돌았다. 그 동영상의 첫부분을 보다가 '아, 심하다 심해' 하는 생각이 들어 다 보지 못하고 끌 수 밖에 없었다. 나중에 인터넷에서 본 어느 언론의 머리기사를 통해 그 교사가 기간제 교사였다는 걸 알았고, 그 교사는 결국 그만뒀다는 이야기를 읽었고, 학부모들은 이러한 경우 앞으로 그런 징계와 관계없이 경찰에 고소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알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집에서 부모가 아이를 기를 때, 매로 다스리기보다는 끝까지 말로 설득하는 방법을 택한다고 한다. (미국에 실제로 가본 적은 없지만) 몇몇 책에서도 그리 언급하고, 인터넷에서 그런 설득하는 과정을 봤다는 목격기도 많이 읽었다. 주변에 사람이 많든 적든, 급하든 여유가 있든, 어린 아이 (3-6살 정도)가 울거나 투정을 부리거나 잘못을 하면 30분이든 1시간이든 아이을 설득시키거나 잘못을 인지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건 다시 말해 아이들을 제대로 된 판단이 불가능한 미성년이 아니라 한명의 '작은 성인'으로 대하는 것이다.

또한 미국에서는 교사가 학생을 폭행하면 바로 경찰이 잡아간다고 한다. 당연히 집에서도 안 때리는 아이를 학교에서 때린다면 철저한 개인주의 국가인 미국에서 가만히 있을리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교사들은 체벌 대신 말을 해도 듣지 않는 아이들을 교장 선생님에게 데려간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 중의 하나가 교장 선생님에게 끌려가는 일이라고. 영화에서도 종종 그런 장면을 본 기억도 난다.) 그럼 교장 선생님은 아이와 오랜 시간을 들여 다시 상담을 시작한다고 한다. 아이가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계속해서 말썽을 부리면? 그럼 정학을 시킨다든가 퇴학을 시킨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학을 보내기도 하고. (형식적으로 전학이지만 사실상 퇴학에 가깝지 않을까?)

첫단추, 폭력의 시작

난 이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위에서 언급된 방법이 상당히 좋은 방법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일단, 집에서부터 잘못할 때 맞고 자라는 아이들이 수두룩하다. (그게 강도 높은 폭력이든, 규칙을 어겼을 때 맞는 체벌이든 간에) 솔직히 급하고 빠르게 돌아가는 사회에서 부모가 아이의 말을 몇십분이고 기다리고 이야기를 통해 설득시킨다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가정들이 대다수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또한, 학교에서 아이들과 긴 시간 상담을 하는 교장 선생님들의 존재를 들어본 적도 없을 뿐더러, 상담 전문가가 근무한다는 학교 이야기도 들어본 적 없고, 요즘 시대에 정학이나 퇴학을 먹이면 학부모들의 반발은 상상을 초월할 것 같기 때문이었다. (누가 우리 아이 인생 망치려고!)

게다가 대부분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이 각 가정의 아버지의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고 볼 때, '안되면 되게 하라!' 체벌과 기합은 아이를 다스리는 자연스러운 방법 중 하나일 것도 같다.

그렇다면, 저쪽 동네와 우리나라의 차이를 요약하자면 이렇게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저쪽 - 합리적이고, 비폭력적인 방법을 택한다. 시스템을 못따라가는 아이들은 합리적으로 노력을 한 후에 그래도 현실적으로 당장 마땅한 방법이 없다면 (당연히!) 낙오시킨다.

우리나라 - 감정적이고, 정서적인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 체벌과 함께 구슬리기도 하고 위협하기도 하고, 달래기도 한다. 시스템을 못따라가는 아이들이라 할지라도 때려서라도 고등학교 마칠 때까지는 끌고 간다.

공교육의 역할, 잘못된 환상?

그렇다. 우리나라는 '때려서라도 끌고 가는 시스템'인 것이다. (이것은 집이건 학교건 가리지 않는다.) 그러니, 아이를 위한 노력을 한 후에 학교에 있는 게 서로에게 좋지 않다고 판단된다고 싹둑 잘라버리는 건 우리의 정서(?)에 맞지 않는다. (물론 내가 그 '우리의 정서'라는 것에 동감한다는 뜻은 아니다.) 실제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선생님에 대한 신화' 중 하나는 '중고등학교 시절, 때려서라도 나를 사람으로 만들어주신 평생의 은사님께 감사한다', '그 때 선생님이 나를 회초리가 부러져라 때리고, 매일 내 잘못을 (폭력을 통해) 따끔하게 지적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쯤 형편없는 인생이 되어 있을 거야' 같은 것들 아닌가.

적고 보니 마치 불량품 0%, 무결점 신화를 자랑하는 기업의 성공담에 관한 이야기 같다. 학생들은 기성품이 아닌데, 어른들 - 부모들과 교사들은 자신들의 잣대로 아이들을 재보고 그 잣대에 맞지 않는 '불량품'은 깍고 다듬고 두드려서 틀 안에 밀어넣는 것이다. 그리고는 그 무결점 신화를 자랑한다. 한편, 사회는 불량품을 배출한 학교를 깍아내리고, 단지 학교 교육에 맞지 않은 그 한 인격체를 인생의 낙오자, 제도권의 불량품으로 대한다.

사실 아이들이 어떤 기준을 통해 만들어진 공교육에 적응을 하지 못할 때 사회적으로 받아줄 수 있는 시설이나 시스템을 마련한다면, 그런 아이들에 대해 좋지 않게 바라보는 시선이 줄어든다면 무결점 신화에 집착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혹시 어른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말들이 모두 거짓인 걸까?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고, '학교 공부 잘 했다고 인생에서 성공하는 것도 아니'라는 그 말들 말이다.

현실은...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교사들와 학부모들 (그리고, 학생들)이 서로 편을 먹고 감정적인 싸움을 벌이고 있는 듯 해 안타깝다. 전쟁터는 거기가 아니라 저 위쪽이어야 하지 않을까? 예를 들면, 과연 교육세가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상담 전문가를 각 학교마다 투입시킬만한 시간적/금전적 여유가 있는지, 과연 교장이나 교육감 등 윗사람들이 손 뒷짐지고 책임을 회피하는 게 과연 시스템적으로 맞는 건지 아닌지 같은 것들을 확인하는 일 말이다. (당연히(?) 크게 보면 대학나와야 사람 구실한다는 잘못된 환상, 학력으로 들이대는 사회 분위기 같은 것들도 바뀌어야 하는 것일테고.)

미묘한 선이다. '단일민족'임을 '자랑'스러워 하고, '이웃''사촌'처럼 대하고, '내 일이 아니어도 내 일처럼' 아파하고 기뻐하며 '어른을 공경'하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졌고, 우리 민족은 '정신력이 강한 불굴의 의지'를 지녔다는 것과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다른 사람 일에도 필요 이상으로 '참견'하고, 나이를 많이 먹으면 무조건 '어른 대접'을 받고, 기계든 사람이든 '때리면 결국 말을 듣는다는 인식'과, 나이를 아무리 많이 먹어도 부모로부터 '정신적인 독립'을 하지 못하는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의 경계는 종이 한장의 두께보다 더 얇은 것 같다. 참 절묘한 접점이다.

자고로 천재는 노력하는 이를 당하지 못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이는 즐기는 자를 당해내지 못한다고 했는데, 우리의 교육은 안팎에서 -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토의대안모색을 통한 이해설득보다는 (육체적, 정신적) 폭력당위를 앞세운 규범의무 이상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듯 하여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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