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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view & mind

노출의 계절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글, 사진 중에 외모가지고 이야기하는 것들이 꽤 많다. 노골적인 야한 사진/동영상부터, '외모가 그 정도면 입X치라' 라든가 '예쁘면 용서가 돼' 라든가 하는 이야기들. 물론 그 수위는 굉장히 다양하다. 농담따먹기 수준부터 좀 노골적으로 진지한 언급까지.

방금 전 올여름 패션 어쩌구 하는 글 중에 배꼽티를 입고 - 배꼽을 내놓고 다니는 여성들 (일반인, 연예인 말고) 사진을 올려놓은 글에 '저렇게 뱃살이 많으면 좀 집안에 얌전히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저렇게 벗고 다니니까 $@#!@##$@' 같은 댓글들이 우수수 달려 있는 글을 봤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호주에서 공부할 때 크게 놀랐던 것 중의 하나가 여성들의 노출에 대한 것이었다. 이를테면 호주 여자들이 홀딱 벗고 다닌다거나 야시시한 걸 많이 입는다거나 한다는 게 아니라 그냥 자신의 소신(?)대로 입는다는 느낌이 충격 아닌 충격이었다.

내가 인식하게 된 것 중에 가장 좋은(?) 예는 바로, 뱃살이 한 웅큼 삐져나와도 배꼽티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꽤 많이 봤다. (물론 길을 지나다니면서.)

그런 사람들을 자주 보다가 어느날 문득 내 머리를 강하게 스치고 지나간 생각은 이런 거였다. '아, 사람은 다 똑같아. 여자, 남자이기 이전에 일단은 다 고깃덩어리야.' 였다. 표현이 좀 우습다면 이렇게 표현하면 어떨까? '인간은 그냥 인간일 뿐이야.' (그러면서 동시에 느꼈던 것 중의 하나는 '역시 서양애들이 개인주의적이라는. 서로를 크게, 집요하게 의식하고 의식받지 않는다는 말이 이런 말이구나'하는 거였다.)

남자는 울면 안되고, 키가 어느 정도 커야 하고, 화통해야 하고,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좀 찌그러져 있어야 하고, 여성은 좀 다소곳해야 하고, 다리 벌리고 앉으면 안되고, 어쩌고 저쩌고... 예쁘면 용서가 되고... 하는 생각을 스스로 평상시에 별로 가지지 않았다고 생각했었는데, 옆구리로 삐져나온 허릿살을 여러번 보다가 어느날 크게 느낀 것이다. "아- 사실은 나도 굉장히 그런 고정관념에 갇혀 있었구나-"

내가 이걸 고정관념이라고 느낀 이유는 딱 한가지다. 예쁜 걸 많이 좋아한다고 저질로 볼 필요도 없고, 그런 걸 의식하지 않는다고 '진보적(?)'이라고 볼 필요는 없지만. 중요한 건 그걸 스스로 자신이 판단하느냐, 판단하지 않고 기존의 의식을 '별다른 생각없이 따랐느냐'라는 것이다.

남자든 여자든 심지어 돌뿌리든 잡초든 예쁘면 좋지. 인간이 가진 미에 대한 본능은 이해하지만, 그게 사람을 판단하기도 하고 조롱하기도 하는, 내면의 성향까지도 지레짐작하는 게 공공연한 '즐거운 유머'가 되어버렸다는 게 무섭기도 하고 징그럽기도 하다. 혈액형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만큼이나 싫다.

p.s. 크크. 재밌긴 하다. 왜 난 옆구리로 삐져나온 허릿살을 보고 '남녀를 외모로 차별하는 세상'을 봤을까.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