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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ly cinema/talk about movie

One Point O - 누구를 위한 버전업일까?

영화의 제목은 One Point O 이다. 우리말로 하자면 일 쩜 영, 흔히 소프트웨어 버전 등을 칭할 때 사용하는 바로 그 1.0 이다.

일단, 이 영화는 친절한 영화가 아니다. 시간에 대해서도 장소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설명같은 건 없으며 그들이 쓰는 용어들이나 하는 일들도 모호하게 처리되어 있다.

하지만 현실을 떠올리게 하는 여러가지 메타포*1가 등장하는 이 영화는 여러 모로 재미있으며 상당히 많은 내용을 건드리고 있다. 이 영화의 플롯은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다.

1. 영화의 배경은 시간과 장소를 알 수 없는 어느 가까운 미래. F.A.R.M. (팜, 농장)이라는 다국적 기업이 전세계 식료품의 90% 이상을 독점 공급하고 있다.

2. 주인공 사이먼 (제레미 시스토 분)은 재택근무를 하는 프로그래머인데, 어느날 그가 사는 아파트에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내용물도 없고 수취인/수신인 정보도 없는 빈 소포를 몇 번이나 받는가 하면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묘령의 여인을 만나게 된다. (나중에 이 연인과 가까워지는데 이 여인의 이름은 트리시 (데보라 카라 웅거 분)이다.)

3. 그가 맡은 프로그램의 개발은 바이러스 때문에 파괴되어 해당 작업분을 회사로 보내지 못하게 되고, 그는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 쫒기게 된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흥미로운 점은 인체(속의 의식)를 하나의 소프트웨어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숙주세포에 붙어 증식을 하는 바이러스와 컴퓨터 바이러스의 구분이 분명치 않다는 것, 주인공의 목소리를 가진 인공지능 로봇이 주인공을 돕는다는 설정 역시 재밌는 설정이다.

Simon J: I'm full of bugs. I'm full of mistakes.
Trish: Ssshhh. Life is full of mistakes.

사이먼 제이: 나는 버그투성이야. 실수투성이라고.
트리시: 쉬... (원래) 삶은 실수로 가득해.

(명확하진 않지만) 영화에서 주인공은 바이러스에 노출이 된다. 그 바이러스는 인체에 영향을 미친다. 두드러진 현상으로는 이상할 정도로 과하게 우유를 먹고 싶어하는 욕구다. 동료인지 적인지 알 수 없는 퀵서비스 가이로부터 업그레이드를 받은 이후에도 이상한 행동은 계속된다. 우유를 먹고 싶어하는 욕구는 사라졌지만 갑자기 "네이쳐 프레쉬 밀크"라는 말을 내뱉게 되는 것.

뜻이 모호한 단어들과 분명하지 않은 설정들로 이루어진 이 영화는 마지막에 이르러 이 모든 게 다국적 기업 팜의 실험 때문이었음을 설명한다. 그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사실 팜의 실험용 기니 피그 같은 존재들이었고, 사이먼의 우유에 대한 모든 욕구 역시 팜에서 행한 '그 어떤 실험' 때문이었음을 암시한다.


Howard: The bad people can save you but they won't. The good people wanna save you but they can't.

하워드: 나쁜 사람들은 널 도울 수 있어, 하지만 그들은 돕지 않지. 좋은 사람들은 널 도와주고 싶어하지만 도울 능력이 없고.

팜이 행한 실험이 무엇이었는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주인공 사이먼은 자신이 무슨 프로그램을 만드는지도 모르면서 코드의 일부분을 작성하는 프로그래머인 것처럼 감독은 관객들에게 같은 느낌을 제공하는 선에서 묘사를 멈춘다. 관객은 그저 짐작으로 알 뿐이다. 주인공에게 일어난 일이 음모인지 단지 주인공의 착각일 뿐인지도 확실치 않고 심지어 영화 마지막에 다소 충격적인 행동을 하는 하워드가 주인공 편인지 적인지도 알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무엇이든 모호한 현대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그 안에 사는 우리들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

영화는 시종일관 대단한 자잘한 기계적 소음을 화면 뒤에 깔고 있다. 음악은 Terry Huud가 맡았는데 사운드와 마찬가지로 일렉트로니카 계열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1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떠오르는 이미지로는 카프카 (스티븐 소더버그의), 여인의 음모 (Brazil), 시계 태엽 오렌지 등을 꼽는데 어느 정도 다 맞는 이야기인 듯 싶다.

p.s.1 제레미 시스토 (Jeremy Sisto)는 드라마 <식스 핏 언더 (Six Feet Under)>에서 빌리역을 맡았던 그 배우이다.
p.s.2 데보라 웅거는 참 독특한 느낌의 배우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는 왠지 나이들어 성숙한 스칼렛 요한슨 같은 느낌이 들었다.
p.s.3 감독 제프리 렌프로와 마테인 쏜슨은 버라이어티지가 뽑은 2004년 top ten hot new directors 목록에 올랐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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