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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view & mind

가수 윤도현에 대한 몇 마디 잡담

첫 인상

기억은 정확히 정확히 안나지만 90년대 중반 어느 가수 콘서트를 갔는데 게스트로 어떤 씩씩한 사내가 나왔다. (몇년인지도, 그 가수 이름도 기억이 안나다니...-_- 흠... 이소라였던가? 권진원이었나?) 아뭏튼 소극장 공연이었는데, 게스트로 나온 그 사내는 짧은 머리에 말을 정말 씩씩하게 하는 사람이었다. 우러찬 목소리로 "군대갔다 온지 얼마 안되서 그러니 이해해달라"고 하니 사실 좀 재밌기도 했다.

그는 기타 하나를 잡고 분위기가 서로 다른 2곡의 노래를 불렀다. 씩씩하게 부른 "타잔"은 가사가 웃겨서 웃었고, "가을 우체국 앞에서"는 외모에서 풍기는 씩씩함과는 정반대로 섬세한 기타 연주에 놀랐었다. (직접 기타를 쳤다) 노래 부르고 들어갈 때야 그 씩씩한 태도와 목소리 속에 숨은 수줍은 순수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사람이 윤도현인 걸 나중에야 알았다. 내가 그 때 느낀 첫인상은 지금도 여전하다.

내가 꼽는 그의 베스트 앨범

그가 낸 7장의 정규앨범 중 내가 꼽는 그의 베스트 앨범은 윤도현 2집 혹은 윤도현밴드 0집이라 할 수 있는 "긴 여행"이다. 그의 1집 역시 좋은 포크 앨범이었지만 서정적인 곡들과 사회 비판적 가사의 곡들이 한 앨범 속에서 약간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이 앨범은 메이데이의 프로듀서 유병열과 역시 프로듀서이자 키보디스트, 교수인 강호정을 끌어들여서 앨범의 전체의 완성도를 높였다.

이 앨범의 모든 곡들은 꾸밈없이 정직한 편곡과 한층 풍성해진 사운드를 자랑하며 이러한 곡들은 윤도현의 시원스러운 보컬톤과 잘 어울린다...는 식의 평가가 일반적인 평가라고 한다면 당시 내가 2집을 듣고 느꼈던 점은 "최고라고는 할 수 없지만, 정말 기대되는 밴드가 하나 나왔구나." 였다. 매력적인 보컬과 솔직한 사운드는 정말 '건강함' 그 자체였다.

이후의 윤도현밴드의 앨범을 들어봐도 언제나 아쉬운 부분은 이 부분이다. 밴드의 작편곡 실력은 그렇다 치더라도 시원스러운 보컬과는 어울리지 않는 힘에 부치는 사운드 메이킹과 제대로된 앨범 디렉터의 부재. 한가지 더욱 아쉬운 건, 언제쯤 절정에 오를까 하며 기대하던 그와 밴드의 더 나아진 다음 앨범은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내가 꼽는 그의 두번째 베스트는 1집 "가을 우체국 앞에서" 이다.

정글 스토리

탤런트 김찬우

영화 <정글스토리>의 주인공은 윤도현이며 영화의 내용도 록커가 되고 싶은 젊은이에 관한 것이다. 난 이상하게 초기의 윤도현을 볼 때마다 텔런트 김찬우가 떠올랐다. '아니, 쟤가 쟤 아냐?' 뭐 거의 이 정도였는데, 그런 그가 영화의 주인공으로 출연한다는 게 무척 재미있었다. 난 관객이 채 5명도 들지 않은 극장에서 영화를 봤고, 결국 영화 <정글스토리>는 망했다. 당시 난 앨범 1장 낸 포크 가수가 상업영화의 주인공이라는 게 너무 신기했었다. 윤도현이란 가수, 어설프게 연기한다고 나섰다가 본전도 못건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윤도현은 이 영화를 기점으로 점차 성공했다.

난 지금도 가끔 궁금하다. "약 팔던 놈들이 음악을 알아?" 라던 말하던 영화 속 윤도현은 그의 실제 모습이었을까, 그저 영화 속 캐릭터였을까? 관객 대여섯명 (서너명이었던가?) 놓고 비참한 공연을 하는 윤도현밴드는 그들의 실제 모습이었을까, 그저 영화 속 설정이었을까? 뭐, 상관없다. 어쨌든 그런 모습의 윤도현은 지금 없으니까.

한가지 더 아이러니한 것은 이 영화와 함께 <정글스토리>라는 한장의 앨범이 신해철로부터 나왔는데 영화의 사운드트랙도 아닌, 그렇다고 신해철의 정규앨범도 아닌 어정쩡한 이 앨범 역시 꽤 성공을 거뒀다는 점이다.

변신이여, 성공하라

사실 윤도현 2집으로 윤도현밴드를 기억하는 나는 그동안 그들이 제발 제대로 된 록 히트곡을 내는 록밴드가 되어 유명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제 유명해졌지만 그들의 히트곡은 여전히 "너를 보내고"와 "사랑 two", "사랑할거야" 같은 발라드풍의 말랑거리는 노래들이다. (그리고, 선배들의 리메이크곡) 그리하여, 이제까지의 상황으로 볼 때 윤도현밴드의 록 히트곡 보다는 발라드 히트곡이나 윤도현의 솔로 히트곡을 기대하는 게 훨씬 나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2002 월드컵을 거치면서 "오- 필승 코리아"로 일약 국민가수 반열에 오른 록커 윤도현은 그래서 위태하다. 그래도 "재민이의 육아일기"로 일약 국민가수로 떠오른 GOD와 다른 점은 윤도현은 열심히 노래를 했다는 것이다.

록음악이 꼭 배고플 필요도 없고, 록커는 다른 장르는 건드리면 안된다는 법칙도 없다. 난 그가 사실 잘 '변신'한 것 같다. 록커(록밴드)로서의 활동은 지지부진하지만 광고도 열심히 하고, 음악프로도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그의 솔로 앨범은 대박을 터트렸다.. 그냥 추측을 해보자면, 그가 종이연에서 음악을 시작했다는 점은 그의 1집과 2집에서 확실히 확인이 되고 그의 음악적 기반이 되었지만, 사실 원래의 그는 이런 것들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2집의 강력한 사운드와 사회성 있는 가사로 그를 기대하고 기억하던 사람들의 뜻과는 별개로 말이다. 오히려 내가 그의 베스트라고 생각하고 있는 2집이 그를 속박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난 가끔 그의 3번째 앨범 (윤도현 밴드의 1번째 앨범) 윤도현밴드 Vol.3에 실린 '대꾸가 없네'의 가사가 떠오른다. 인과관계가 맞진 않겠지만 내가 매체를 통해서 알게 되는 그의 이미지와 이 노래가 겹치곤 한다.

대꾸가 없네 (윤도현 글/곡)

아무리 몸부림 쳐도 아무리 크게 말해도
오 아무리 기타를 쳐도 아무리 노래 불러도
대꾸가 없네 사람들은 뭐 다른 걸 원하는 걸까
대꾸가 없네 사람들은 이제 내 빈 가슴엔
쓸쓸한 노래만 노래만 남았구나

수많은 오해와 변명뿐이네 사람이 그립다 하지만
대꾸가 없네 사람들은 뭐 다른 걸 원하는 걸까
대꾸가 없네 사람들은 이제 내 빈 가슴엔
쓸쓸한 노래만 노래만 남았구나

대꾸가 없네 대꾸가 없네

대꾸가 없네 사람들은 뭐 다른 걸 원하는 걸까
대꾸가 없네 사람들은 이제 내 빈가슴엔
쓸쓸한 노래만 노래만 남았구나

대꾸가 없네 대꾸가 없네

난 이제 그가 '한 때' 록커였던 그의 이미지를 조금만 덜 이용하고 이제 다양한 색깔의 가요를 부르는 성공적인 보컬리스트가 되면 좋겠다 (마치 이승철처럼!). 솔직히 그의 솔로 앨범은 성격이 불분명한 윤도현밴드의 앨범과는 달리 활기가 넘치고 듣기 좋으며 그의 여러 행보와 비추어봐도 그게 더 자연스럽다.

꼬랑지

이번에 그가 부른 애국가에 대해 말들이 많다. "신성한 애국가 (-_-)를 록으로 편곡하면 안된다"는 넌센스부터, 부천SK 프로축구단의 연고지를 흥행부진을 이유로 제주로 옮긴 SK가 이 노래의 뒤에 숨어있어서 싫다는 이유, 4년 동안 잠잠하다가 또 월드컵이 되니까 지난 번의 "오- 필승 코리아"처럼 흥행을 노리자는 한탕주의가 아니냐는 비난 (윤도현은 그동안 월드컵 가수로 불리기 싫어한다는 인터뷰를 해왔다) 등 많은 이유들이 있는 걸로 안다.

나도 이 록버전 애국가가 별로 땡기지 않은데, 그 이유는 내가 윤도현의 베스트 앨범으로 그의 2집을 꼽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내게 있어서 그의 2집은 그의 상업적 행보, 록커에서 연예인으로의 변화 등등의 부가적인 이유를 떠나 음악 자체로 제일 완성도 있고 듣기 즐거운 앨범이다. 마찬가지로, 직접 들어본 결과 이 록버전 애국가는 무엇보다 우선 음악 자체가 별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