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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ly cinema/talk about movie

Munich - 폭력의 역사...?

영화 내용이 언급됩니다.

aka 뮌헨

이 영화의 기초가 된 실제 사건의 개요를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1972년 뮌헨 올림픽 당시 팔레스타인 테러단체 "검은 9월단"이 이스라엘 선수단을 인질로 잡았다가 11명을 사살했고 테러단원들도 모두 죽었는데. 그 이후 이스라엘의 모사드에서 테러의 배후인물들을 찾아내 역테러를 시도했다. 작전명은 '신의 분노'.

내가 읽은 영화평들은 대체로 '스필버그가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며 어설픈 결론을 내려고 하지 않는 현명함을 보였다'고 했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동안 불편했다. 크게 이야기하면 2가지이다.

첫째, 실제 사건을 중립적으로 다룬다는 건 뭘까?
둘째, 과연 스필버그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양쪽을 중립적인 시각에서 다루었는가?

실제 사건과 회고록, 그리고 영화

우선 영화가 중립적인 시선을 유지했는가 아닌가와는 별개의 문제이지만 우선 이 영화는 역사적 사실과는 다르다는 걸 알아야 한다. 즉, 영화는 실제 일어났던 사건을 배경으로 하지만 이 영화가 밝히는 '원작'은 실제 사건이 아니라 한 저널리스트가 쓴 책 (Vengeance: The True Story of an Israeli Counter-Terrorist Team)이다.


그리고, 그 책은 이미 여러가지 오류들이 지적되어 왔다고 한다. 단적으로 '신의 분노'를 수행한 요원들은 실수도 많았고 무고한 사람들도 많이 죽였다고 한다.

중립적인 영화란?

영화 <시티 오브 갓 (Cidade De Deus)>을 두고 일부 평론가들은 실화의 탈을 쓴 거짓이라든가, 폭력을 성찰한다는 구실 아래 폭력을 소비하는 영화라든가 하는 평들을 내렸다. 난 그 평들은 오히려 이 영화에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여태까지도 격렬하게 진행되고 있는 분쟁 (팔레스타인 vs. 이스라엘)의 한 사건을 중립적으로 다룬다는 건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nobody's fault' 혹은 '우리 모두의 잘못'식으로 '공평'하게 '기계적인 중립'을 표방하며 이쪽 저쪽의 이야기를 안배하는 것이 중립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게다가 이 영화는 그저 뮌헨 올림픽 당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의해" 일어났던 테러에 대해서만 언급할 뿐이다. 그 이전의 다툼과 반목들은 적어도 이 영화에서 표현되지 않고 전혀 언급도 거의 되지 않는다. 드러난 현상을 바라보는 것에 붙은 '중립적'이라는 표현은 참 허망하다. 그건 오히려 본질을 왜곡할 소지가 다분하다.

여기 두 복서가 마지막 12번째 라운드에서 팽팽하게 주먹을 주고 받고 있는 권투 경기가 있다고 하자. 다른 TV 프로그램을 보느라 그 이전 라운드를 보지 못한 시청자는 마지막 라운드를 보며 "야- 이거 팽팽한데?" 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11번의 라운드 동안 한 복서가 다른 한 복서를 일방적으로 몰아갔을 수도 있다. 스필버그의 <뮌헨>은 오히려 이 마지막 12번째 라운드만 보여주어 그 이전의 라운드가 과연 어떻게 흘러갔었는지 궁금하게 만드는 TV 중계 같다.

과연 이 영화는 중립적인가?

영화 속에서 양측 정부는 똑같이 자신들의 국가를 세우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나, 이 영화는 "검은 9월단"의 배후를 암살해가던 중 고민하는 유대인의 시점으로 영화를 그리고 있다. 그럼 그 반대편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은 한명이라도 나오는가? 그렇지 않다. 팔레스타인 사람이라곤 유머있고 예의바른 사람 한명과 국토 수호의 신념에 가득찬 사람 한명을 보여주는데서 그친다. (이들은 모두 죽는다.)

게다가 팔레스타인 정부 쪽의 과도한 폭력 사용은 영화 내내 강조된다. 반면 주인공인 유대인은 선제공격도 아닌, (저쪽이 하도 심하게 폭력을 사용하니) 뒤늦게 시작한 보복성 폭력으로 삶이 황폐해져간다. 저쪽은 몇백명씩 테러하는데 아무런 설명이 없고, 이쪽은 몇명 암살하는데도 인간성이 상실되어갈 정도로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며*1.

스필버그가 나이가 먹어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그는 예전부터 '가족 만세', '어찌되었건 가정은 좋은 것'으로 모든 문제를 귀결시키던 사람이었는데, 이번에도 역시 '가족 이데올로기'가 나온다. 게다가 이번엔 오히려 더욱 커져버렸다. 이번 영화에서 가족은 이제 대놓고 '민족'이요 '국가'가 되어버렸다. 난 <뮌헨>에 대한 평론가들의 평이 "예전처럼 문제를 단순화시켜서 어설픈 결론을 섣불리 내지 않은 게 그나마 낫다'는 평이라면 차라리 수긍이 가겠다 싶다.

주인공은 영화의 말미에 자신은 물론 자신 때문에 가족이 테러를 당할까 걱정한다. 그는 정부의 맹목적인 명령에는 불복하지만 영화가 끝날 때까지 가족의 안위를 걱정하는 "가장"으로 남는다. 유대인들에게 공격받는 건 이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주인공은 국가의 부름을 거절하면서 이스라엘로 돌아가지 않고 브루클린에 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역시 허망하다. "가족을 사랑하는 그"가 자신이 행한 살상 때문에 가족이 위험에 빠지면 가만히 있을까? 결국 이 영화 안에서의 국가(민족) 이데올로기는 가족 이데올로기 안으로 숨어버렸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의 장점들

위의 사실과는 별도로 이 영화가 영리한 점은 다른데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건 바로 소재의 선택. 9.11이 터지고 난 후 많은 감독들이 테러와 폭력에 관한 영화들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스필버그는 영리하게도 이 문제에 직접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우주 전쟁 (War Of The Worlds)>로 살짝 거리를 두며 이야기를 하더니 다시 한번 9.11 이전의 "유대인과 아랍인 충돌"인 뮌헨 올림픽 테러 사건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또한 내가 이 영화에서 미덕으로 느낀 건 촬영감독 야누스 카민스키 (Janusz Kaminski)의 촬영이다. 그는 영화 <쉰들러 리스트 (Schindler's List)> 부터 계속 스필버그와 함께 작업해 왔다. 사실 잘 몰랐는데, 블리치 바이 패스로 유명했던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Saving Private Ryan)> 때야 조금 찾아봤었다. 이번 영상도 거칠면서도 독특한 톤을 자랑한다*2. 자신의 독특한 색깔 없이 영화마다 달라지는 카메라를 두고 개성없는 촬영감독이라는 평도 있지만 난 반대로 카민스키가 스필버그 영화의 숨은 공로자가 아닐까 싶다.


내 맘대로 trivia

이 영화의 작가, 몰랐는데 <엔젤스 인 아메리카 (Angels In America)>의 작가이다. (공동작가로 크레딧이 올라있긴 하지만)

*1 사실 이게 영화의 주제라고 생각한다. "전쟁을 해오고 있긴 하지만 사실 유대인들도 나름대로 고통 받고 있다고!" 하지만 유대교 근본주의자들로부터 비난받는 이유는 단지 "팔레스타인 입장에서 이야기할 빌미"를 줬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스필버그는 영화를 완성한 후 이 영화가 "이스라엘의 '눈에는 눈' 방식의 대응책을 결코 비판하지 않는다"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고.

*2 이상하게도 이 영화를 보면서 <캐치 미 이프 유 캔 (Catch Me If You Can)>이 떠올랐는데, 그 원인은 아무래도 카메라의 톤인 듯 하다. 특히 화면 안의 빛이 뿌옇게 피어오르는 듯한 장면 (표현력 부족) 은 카민스키의 전매특허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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