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의 전작 <올드보이>는 많은 사람들의 논란 한가운데 있었다고 생각된다. '파장'과 '파문'을 좋아하는 각종 언론 매체에서는 그 영화가 파격적이고 충격적인 소재를 풀어내는 영화라며 호들갑을 떨었고, 상당히 궁금했지만 미리 영화 내용에 대해 아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나는 애써 원작인 일본만화도 보지 않고 기다렸다.
영화를 보고 난 다음에 든 생각은? '잘 만든 영화다 못 만든 영화다', '재밌다 재미없다'를 떠나서 솔직히 언론들의 이야기만큼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그저 잘 봤다.
'친절한 금자씨 - 친절한 관객들' 계속 보기 (영화 내용이 언급됩니다.) " tt_lesstext=" " tt_id="1"> 사실 9시 뉴스에 나오는 각종 사건, 사고들이 더 영화 같고, 허구 같고, 충격적인 것들이 많지 않은가. 솔직히 그 정도 수준의 이야기는 9시 뉴스 30분 동안 2-3분 나오고 말지 않은가. 언론이 좀 더 호들갑을 떨면 그보다 조금 더 가긴 가겠지.
이번 영화 <친절한 금자씨>는 소재의 충격성을 따지자면 <올드보이>보다 표면적으론 그보다 더 얌전하다. (물론! 충격적인 소재나 이야기가 중요한 건 절대 아니다.) 죄를 대신 뒤집어 쓰고 감옥에 들어갔던 한 여자가 13년 동안 복수를 준비하고 그걸 실행에 옮기는 이야기니까. 그런데, 사실 난 이 영화를 보고 솔직히 좀 놀랐다.
첫주 흥행 성적이 '관객 1천만 시대'를 열어제낀 <태극기 휘날리며> 수준인 이 영화에는 여자가 여자에게 성행위를 강요하는 장면이 나오는가 하면, 밥을 먹다가 부인을 강간 하듯 성행위를 하는 남편도 나오고, 다수가 개인을 사적으로 단죄하는 장면도 나온다 - 그것도 각종 칼과 도끼 등의 무기를 이용하여 (물론 그 다수는 예전에 피해자였지만). 그런데, 언론에서는 <올드보이> 때에 비교해보면 참 조용하다. 심의에 잘리지도 않은 것 같고 (물론 18금이지만).
이거 ... 박찬욱의 힘인가, '심의제도'의 우스움인가. 그게 그건가?
그리고, 나머지는 그냥 그랬다. 이야기가 사방으로 튀어서 영화의 이어짐이 매끄럽지 않은데 감독이 그걸 원했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하는 거고, 까메오들이 화려하다는데 별관심 없으니 나오나 보다 하고, 언론에서는 '복수 3부작'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감독은 정작 그런 거 아니라고 하니 그런가보다 하고, 씨네 21의 '한국영화 타이틀 시퀀스 베스트10' 순위에 들었지만 난 순위에 들어갈 정도까지라고 생각들지는 않고... (때맞춰 장진 감독의 '아는 여자'까지 순위에 오른 걸 보고 좀 그랬다. '띄워주기', 좀 노골적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기 때문.)
백선생 (최민식 분)이 제니 (권예영 분)와 금자씨 (이영애 분)의 대화를 번역해주는 장면은 좀 묘했다. 백선생이 자신의 생사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조차 감정을 실어 번역해주는 장면에서는 그 아이러니한 상황에 살짝 웃긴 했지만, 사실 원래 외국어라는 건 그렇게 하는 거 아닌가? 그 씬을 보면서는 '영어를 혀끝으로 살살 굴리면서 하지 않는 장면을 볼 때도 웃어줘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머리 속에 차 있었다.
마지막으로 영화 속 이영애의 파격적인 연기변신이 백미라고들 하는데, 내 눈엔 별로 그리 보이지 않았다. 연기를 못했다는 뜻이 아니라 예전부터 연기할 때의 분위기와 비슷하게 느껴졌다는 것 - 다만 역할이 좀 달랐을 뿐이지. 언제나 부드럽고 지적이고 착한 역할 하던 배우가 새 영화 속에서 욕 좀 하고 얼굴 좀 찡그린다고 다 대단한 건 아니지 않은가. 내 눈엔 여전히 '연기하는 이영애'로 보였다.
그나저나 '대장금'에서도 사실 이런 역할이었지 않나? 한편으로는 복수를 다짐하고, 한편으로는 친절함을 베풀고 - 다른 사람들의 한까지 풀어주려 하고. '친절한 장금이' 혹은 '대금자', 뭐 그렇다는 얘기.
p.s.
그나저나, <친절한 금자씨>의 포스터가 참조했었을 것 같은 영화 포스터가 있었는데, 그게 뭐였는지 기억이 안난다. 굵은 붓터치가 되어 있는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