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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view & mind

휴일 잡담.

 1 
어렸을 때, 필통에 '나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프로그래머가 될거야' 라고 적어놓은 걸 본 친구들 중 몇몇이 종종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하고 싶은 게 분명해서 좋겠다... 나는 아직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문구를 (- 그것도 영어였다) 뻔뻔스럽고 유치하게 필통에 적어놓았던 게 살짝 창피스럽지만, 어쨌든 분명히 무언가 하고 싶은 게 있었고, 친구들은 그걸 부러워했었다. 그리고는 어리석게도(?) 열심히 공부만 했다.

 2 
학교를 졸업하고 복화술에서 일 할 때,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가끔 이런 이야기를 듣곤 했다. '그래도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좋은 거야. 넌 그런 게 있어서 좋겠다.' 물론, 여기서 '그래도'란 '돈을 벌고, 모으진 못하고, 지금 당장 경제적인 여건은 어렵지만' 이라는 뜻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친구들이 내 여건을 어여삐 여겨 힘을 내라는 응원의 목소리로 그런 이야기를 해준 게 아닐까 싶다. 물론 문득 직장생활의 회의가 느껴지는 날 졸업과 동시에 미래에 대한 불안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일로 툭 튀어서 지내는 나를 보고 진심을 담아 전한 적도 있으리라고 본다.

 3 
그렇게 컴퓨터를 좋아하더니, 다시 '난 음악과 음향이 좋아요...' 라고 이야기를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지누션 노래처럼 난 '겁없던 녀석'이었던 걸까? 이러다가 언젠가 진지하게 '맞아요, 사실 난 원래 영상에도 관심이 많았다고요' 라고 이야기하는 날이 올까봐 사뭇 무섭기도 하다.

예전에 H가 그랬다. '사실 난 어렸을 때부터 죽음이라는 생각에서 떨어져 본 적이 없었어' 그 이야기를 들으며 그래, H라면 참 당연하다는 생각을 함과 동시에 그러지 말면 좋을거라는 바램이 동시에 들었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나에게도 마찬가지였고.

죽는 게 무서워서 사람들은 자꾸만 무언가 모으고, 쌓아두고, 이루고, 남기려고 한다지만, 반대로 죽음이라는 게 피해갈 수 없는 현실이라면 그렇게 기를 쓰고 모으고 쌓아두고 남길 필요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

죽음이라는 공포 때문에 자신은 그리 원치않는 일들도 하며 그리 원치않는 것들을 모으며 살 수도 있지만, 기왕 그 공포가 다른 것으로 대체되지 않는다면 자기가 원하는 걸 모으며 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급하게 살고 빨리빨리 처리하고 초와 분을 다퉈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 정말 원하는 것이어서 스스로 즐기며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많은 시대이기 때문에 본인도 정말 원하고 잘하고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살 수 있는 시대라고 보는 게 정신건강에도 좋을 것 같다.

 4 
왜 사람들이 아둥바둥 급하게 지내는지 모를 때가 많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 나에게는 '그거 죽을 때도 가져갈거야?' 라는 질문 하나만으로도 해결되지 않나 싶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죽는 게 정말 못견딜 것 같으면 안절부절 못하고 밤새 고민하고 용기를 내서 좋아한다고 이야기하는 게 이해가 된다. 그런데, 그런 거 말고, 길가다가 흙탕물에 옷이 튀었다고 화를 내는 건 좀 웃기잖아.

하긴, 결정적인 문제는 나에겐 별게 아닌 것이 어떤 사람에겐 중요한 것일 수 있다는 것. 내가 내 잣대로 판단하고 평가하는 건 삼가해야겠지만, 솔직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것으로도 덜 아둥바둥 살지 않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만약 지금의 내가, 길가다가 흙탕물이 튀어 옷이 더러워진 것이 시간이 오래 흘러도 두고두고 생각나서 분한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래서, 명상 테이프와 요가 DVD가 팔리는 건가?

물론 나도 아둥바둥 할 때도 많다.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한다'는 속담에 언제나 공감한다. 내 시선이 나에게 집중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어느 정도 가 있다는 뜻은 내 관심사가 다른 사람에게도 조금은 닿아있다는 뜻이 아닐까 싶다. 또한 내가 아둥바둥 하고 싶지 않을 때 다른 사람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함께 아둥바둥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5 
대체로 내가 내 자신을 '꾸준하고 강도 높은 오랜' 긴장 속에 몰아넣으며 어떤 결과를 뽑아내려고 닥달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가끔 생각한다. 쉽게 생각하면 '나는 내가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것보다 그런 스트레스를 더 싫어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내가 그것을 얻어서 뭐 할건데? '그거 죽을 때 가져갈 수 있는 거야?' ... 거참, 대책없는 허무주의와 연결되어 있네.

물론 좋아하는 것들은 분명히 많다. 심하게 좋아하는 것들도 있고. 평상시의 나는 그걸 위해서 움직이는 것이라고 본다. 다만 그런 것들이 많지 않다. 그런데, 많지 않다는 건 이모저모 문제다. 이래도 저래도 별 상관이 없는 게 많다는 건 주위 사람을 편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무언가 내 반응을 기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참 불편한 일이라는 걸 참 여러번 경험한 것 같다.

 6 
내가 멀리 보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들을 적절한 시기에 해결할 수 없을까봐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또한 불필요한 것들을 편견/고정관념의 강요, 협박과 시선 때문에 꾸역꾸역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을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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