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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view & mind

fantasy

예전부터 가지고 있는 생각인데 - 난 육체노동에 대한 판타지가 있다. 땀 흘려 직접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만들고, 무언가를 다듬고 - 눈에 보이는, 손으로 만져지는 것들을 만드는 것에 대한 판타지가 있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음악, 영화, 컴퓨터, 커뮤니티, 네트워킹 이런 것들이다. 그래서인지, 항상 머리 속에 고민이 있는지도 모른다 - '내가 하는 것들이, 내가 원하는 것들이 과연 실재하는 것들인가'에 대한. 그래서인지, Ghost in Shell도 '육체(physical)와 정신(psychical)의 경계가 무엇인가'에 대한 영화로 읽고, 그래서 좋아한다. (재미있게도 아직 Innocence는 안 봤지만 잡지에서 읽은 바로는 1편을 뒤집는 주제 - '그래도 결국은 육체가 있기 때문에 정신이 있는 게 아닐까' 라고 해서 기대된다.)

왜 나는 이런 판타지를 가지고 있을까.

아버님 때문일 수도 있다. 아버님은 언제나 '생각'을 잃지 말라고만 이야기하셨지만, 그건 아버님이 평생 스스로 몸을 움직여 일을 해오셨기 때문에 - 몸을 움직이는 건 '기본'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 하셨다고 생각한다. 실천하지 않는 생각은 실제로 아무 것도 아니라는 걸, 실천이 따르는 삶의 아름다움을 아버님은 언제나 당신의 몸으로 직접 보여주셨으니까. 게다가 난 아버님을 존경하니까.

내가 손재주가 없어서일 수도 있다. 손을 움직여 무엇을 만들어 본 경험이 적기 때문에 가지는 일종의 (작은) 컴플렉스일 수도 있다. 한번 결핍되었다고 느끼는 것들은 그것이 채워질 때까지 끊임없이 무언가를 갈구하게 만들기 때문인 것처럼.

죽는 게 두렵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언제나 죽는 것에 대한 생각이 머리 속에 있다. 그게 나를 조바심나게 만들기도 하고, 나를 깊은 허무로 빠트리기도 하는데 - 마치 부모가 아이를 갖는 것이 종족보존에 대한 본능에서 출발했듯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나로 하여금 무언가 실재하는 걸 만들도록 종용하는 것일 수도 있다. 죽은 다음에도 나를 기억할 만한 만져지는 무언가를.

그래서인지 나는 '내 아버지는 목수였다.'라는 문장을 매우 좋아한다. 난 아버님이 목수였다고 생각한다. 사실 세상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 사람은 목수에 비유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없던 무언가를 스스로 몸을 움직여 만드는 사람은, 아무 것도 아닌 것들을 모아 의미있는 것들을 만들어 내는 사람은, 그 만들어 낸 것이 무엇이던 간에 - 그게 아무리 작은 것이더라 하더라도, 그 사람은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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