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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view & mind

대안 미디어로서의 블로그에 관한 생각

민노씨시의성에 대한 노력과 낚시의 구별에 어떤 기준 (표준)이 있을까 하고 궁금해 했었죠. 어떻게 보면 비슷한 이야기지만 정확한 답변이 아니기에 하지 않았던 생각을 잠시 풀어 보면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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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블로그가 대안 미디어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집단이 필요로 하는 개인들의 로그는 그 비율로 따지면 지극히 적은 양일 거예요. 세상(world)의 개인들은 모두 자기만의 세상 (own universe)을 가지고 있고, 이 세상 속에서 공통의 관심사를 유지하고 비슷한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있겠어요. 물론 가능성은 있죠. 이 관심사와 의견들에 꼬리에 꼬리를 물리면 커다란 덩어리를 이룰 수도 있으니까요.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게 바로 메타 사이트라고 생각해요. 메타 사이트는 특정 인터넷 사용자 (블로거라고 해두죠)들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가늠하는 창일 수 있거든요. 마치 우리가 기존의 미디어(언론)를 통해 세상을 파악하듯이 말이죠. 물론 메타 사이트에 아무런 기능이 없어서 단순히 시간적인 순서대로만 글들이 올라온다면 안되겠죠. 블로거들이 쏟아내는 글들은 점점 많아지고 있으니까요.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이나 마찬가지죠 - 필터가 필요해요, 그게 검색이든 추천이든 관심 키워드든 말이죠.

예를 들어, 그런 관점에서 사람들이 이용하려고 노력했던 것 중 하나가 태그라고 볼 수 있겠죠. 몇몇 사이트에서는 기능에 의미를 부여하고 재밌게 이용해 나가고 있지요. (솔직히 전 개인 블로그들에서 한 때 유행처럼 번졌던 태그 클라우드가 어떤 다른 형태로 나아갈 거라 생각했는데 계속 같은 상태더군요.) 또한 인물을 중심으로 한 네트워킹도 좋은 효과를 보고 있죠.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면 쏟아내는 생각들에도 뭔가 비슷한 점이 있을테니까요. 그 밖에도 웹2.0이라는 용어가 쓰이기 시작하면서 여러가지 시도되는 것들, 많잖아요?

어쨌든,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메타 사이트가 구성되고 나면 우리는 하나의 거대한 아카이브를 가지게 됩니다. 실시간으로 커지는 아카이브죠. 이것이 세상사를 바라보는 거대한 백과사전이라고 한다 해도 우리는 위에서 이야기한 검색이나 필터 등 여러 도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개별 내용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이 때 개별 내용에 쉽게 접근한다는 것이 바로 기존의 미디어와 비교할 때 블로그와 메타 사이트가 가진 차별점입니다. 사실 시의성이라는 측면으로 볼 때 블로그는 기존의 미디어를 따라잡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쉽게 말해 왠만한 노력없이는 온/오프라인에서 정보력이 앞서는 기자나 기업의 정책담당자 등 특정 직업군이 운영하는 블로그보다도 나을 수 없는 게 현실이잖아요.

하지만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시간을 재배치할 수 있는 힘을 얻었습니다. TV 프로그램 다시보기나 영화 다운로드처럼 인터넷 안에서 우리는 시간을 마음대로 찔러볼 수 있어요. 즉, 시간이라는 팩터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해졌기 때문에 우리가 블로그에 글을 작성할 때도 시의성 보다는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자기의 꾸준한 관심사에 대해 포스팅을 해나가야 한다는 거죠. 기존의 미디어보다 너무 늦게 적었다거나 사람들의 관심이 적은 분야라는 걱정 따위는 날려버리라는 뜻입니다.

인터넷을 뒤지다 발견한, 우리가 공감하고 공부하게 되는 글들은 대부분 통찰력있게 쓰여진 글이나 시간을 두고 깊게 분석된 글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인터넷에 적합한 글의 길이라는 게 있으니 길어질 것 같으면 여러편으로 나눠 적어도 좋겠죠.) 심지어 사사로워 보이던 작은 로그들이 오랜 시간 남겨져서 하나의 전체적인 덩어리로서의 가치가 커져 아주 유용하고 편리한 도구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잖아요.

예를 들어, 일관된 포지셔닝 아래 꾸준히 화학(공학)과 사회(정치)에 대한 글을 적으시는 기불이님의 모기불통신, 수학과 논리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귤님의 mentalese, 미디어와 블로그, 관계에 대한 통찰을 글에 반영하시는 아거님의 GatorLog at 6 A.M. (현재), 공포영화에 대한 열정을 로그를 통해 전파하는 Arborday님의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블로그, 꾸준히 개발(?)시킨 형식으로 독특한 서비스를 만들어낸 수만님의 suman's shallow thoughts 등 우리가 좋은 블로그라고 칭하는 블로그들은 대부분 오랜 시간을 통해 만들어졌고, 오랜 시간이 지나 읽어도 좋기 때문에 좋은 블로그라 하는 것이잖아요.

따라서, 당장의 시의성이 반영된 글들은 정보에 접근이 용이한 분들에게 맞기면 됩니다. 혹은 블로그를 프로파간다의 수단으로 삼아 순발력있게 아젠다를 세팅하고 주장을 펼치는데 재능있는 분들도 있을 수 있겠지요. 그게 기존의 미디어를 통할 수도 있고,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특정 직업군의 블로거들을 통할 수도 있죠.

그리고, 블로고스피어의 혹은 세상의 대중은 그보다는 진실한 감정이나 일상의 경험 등을 바탕으로 진솔하고 솔직한 이야기들을 꾸준히 적으면 되지 않나 싶어요. 세월이 흐르고 지혜가 생긴다면 넓은 통찰력과 날카로운 분석 혹은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면모까지 드러낼 수 있겠지요. 이런 형태야 말로 대안 미디어라 불릴만 하지 않을까요? 기존의 미디어가 부족하고 못나서 대체 (substitutive)하는 것이 아니라 형식도 판단도 주체도 새로운 대안 (alternative) 미디어로서의 블로거의 의미는 바로 이런데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것이 제가 미디어로서 블로그의 가능성을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p.s.

즉 민노씨의 글에 다시 한번 답변을 하자면 제 생각엔 블로그라는 툴로 보자면 결국 시의성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물론 내부고발자라든지 잘못된 관행을 꼬집는 역할, 기존의 미디어가 놓치고 있는 시선 등 충분히 함께 해 나갈 수 있는 면이 있지만 그건 블로그가 가진 가능성의 일부일 뿐이라는 거죠.

IT 분야를 제외한 메타 사이트, 메타 블로그가 힘든 이유도 사실 이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메타 사이트가 힘을 가지려면 이런 블로그/블로거들을 찾고도 그것들/그분들끼리 비슷한 세계관을 공유해야 할텐데 그러기가 쉽지 않잖아요. 하지만 이런 정석을 밟아나갈 때야 말로 대안 미디어로서의 기능이 충실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