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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view & mind

잡담: 괜히 찍히는 놈만 억울한 시대

Arborday님의 글을 읽다가 한동안 하던 생각을 조금 적어봅니다.

자본주의의 특성 자체가 분업화이다보니, 하나의 완결된 현상에 대해 그 누구도 완전히 책임질 수 없는 복잡성이 증대된 것 같습니다. 아니 달리 말하면 그 누구도 비판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 없다고 해야 할까요.


그 요즘 한창 말 많은 대출 광고 (사체 광고)들 있잖아요. 최민식이 대출 광고에 나오니,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라고 비난을 하고, 김하늘이 대출 광고를 그만 두겠다고 하니 '잘 했다.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았다' 라고 칭찬을 합니다.

대부분 이런 대부업체의 이자율은 최고 66%까지라고도 하죠. 살인적인 이자율입니다. 게다가 대부업체에 고객을 소개시켜 주고 15%를 커미션으로 챙겨가는 일을 하는 사람만 해도 전국에 5천명이 넘는다고 하죠. 이런 대부업체에 한번 돈을 빌리면 신용도가 급락해서 제1금융권에서 대출을 받는 건 거의 불가능해지기 십상이란 말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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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최민식이 모델을 그만둬도, 김하늘이 모델을 그만둬도 여전히 다른 연예인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비난조차도 없어요. 의외로 유명한 연예인들인데도 말이죠.

loading... 100% -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인기의 척도라고 해야 하는 걸까요? 물론 이 인기라는 것도 어느 정도 젊은 층에 한정된 인기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어쨌든 계속해서 새로운 대출 광고에는 새로운 연예인들이 잘 꾸려나가고 있습니다. 꽤 유명한 연예인들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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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대출 광고만 문제일까요? 예를 들어 아파트 광고는 어떨까요? 몇십억씩 하는 모델료를 받은 연예인이 유럽이니 지중해니 프리스티지니 해가면서 명품 이미지를 유지하는 아파트들의 광고 말이죠. 비싼 집값에 몇 십년 돈을 모아도 감히 집 살 엄두를 못내는 사람들이 보기엔 그것도 역시 바람직하지 않은 광고 아닌가요?

한겨레21 - 이원재의 5분 경영학 - 아파트 광고는 왜 하시나요
동아닷컴 - 심상정 “이미연·김남주… 아파트 광고 중단해주세요”

하지만, 그 어떤 연예인의 팬들도 '그런 광고에 출연하지 말아 주세요-. 허영심을 부추기고 서민들에게 박탈감을 주는 일은 당신의 이미지와 맞지 않습니다.' 라는 말을 하지는 않잖아요. 오히려 화장품 광고와 더불어 인기의 척도로 여기죠. 대다수 연예인들의 꿈이기도 하고요.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 대부분의 광고는 성능과 기능의 우수성이나 안정성을 설명하는 광고보다는 이미지 광고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대놓고 명품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백색가전 광고, 고만고만한 기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연예인들의 미모를 뽐내는 핸드폰 광고, 드라마나 영화로 성공한 배우들이 슬로우 모션으로 멋지게 폼잡는 자동차 광고 등 우리는 모두 허구의 이미지를 보며 가격을 지불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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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그래서인지 '괜히 찍히는 놈만 억울한 시대'를 우리가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건 되고, 저건 안되고 하는 기준의 일관성을 찾기가 어렵고 본질적인 문제를 건드리려는 시도는 점점 줄어드는 이유는 세상이 그만큼 복잡해졌기 때문일겠지요. 음주운전을 하고도 걸렸다고 아쉬워하고, 괜히 이슈가 커져서 찍혀버린 유승준과 싸이는 상대적인 억울함을 느끼게 되고, 무슨 비리만 터지면 "왜 하필 지금이냐"며 목소리를 높이는 저기 딴 나라의 정당의 생각이 통용되는 사회는 결국 우리가 만들어낸 게 아닐까요.

그런 것들 신경쓰며 치열하게 살기엔 일상이 바쁘고 힘들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모두가 노무현 때문이 아니라, 어느 누구의 책임이 아닌 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책임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