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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ly cinema/small talk

짧게: 그놈 목소리


0 이 영화는 여러가지 면에서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을 떠올리게야 만드는 작품이다. (실제로 영화를 보면서 여러 번 생각이 났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살인의 추억>에 비해 여러가지 면에서 아쉬운 면이 많은 작품이 되었다.

1 우선 음악이 그러하다. 이 영화의 음악을 맡은 이병우는 봉준호 감독의 <괴물>의 음악도 맡았는데, 난 그 때도 <살인의 추억>의 음악에 비해 아쉽다고 생각했었다. 반복하자면 이와시로 타로가 <살인의 추억>에서 들려준 타악 (리듬) 중심의 스코어들은 영화 속에 잘 녹아들면서도 분위기를 정확하게 잡아줬던 반면 이병우의 <괴물> 음악은 작곡가 특유의 색깔이 이질적으로 섞여 있으며 감성적인 느낌의 멜로디가 영화와는 불균형적으로 느껴졌었다.

이 작품에서도 그 느낌은 비슷하다. 이병우의 몇몇 감성적인 스코어들은 아이가 납치된 부모의 심정을 잘 표현해주기도 하나 전체적으로 긴장감을 유지시키는데 있어서는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참 아쉬운 부분이다.


3 영화 속에서 표현되는 경찰의 무능력함은 너무 빈번해서 오히려 식상할 정도였다. <살인의 추억>에서 보여지던 경찰의 무능함과 무식함은 영화 속 다른 여러가지 요소들과 함께 어우러져 당시의 시대상을 나타내는 효과적인 영화적 장치로 기능하고 있었지만 이 작품 속의 경찰의 무능함은 그저 경찰의 무능력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듯 했다.

오히려 경찰의 무능력함은 납치 후 피가 말라가던 때 시련이 우릴 강하게 만들어 준다며 쓸데없는 기도만 해주던 목사와 신도들을 내쫒는 장면과 더불어 개인에 위험이 닥쳤을 때 세상 사람 아무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자괴감을 불러 일으키기 위한 설정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3-1 또한 보면서 짜증이 났던 지점이 바로 저 경찰들의 묘사였는데, 경찰을 묘사함에 있어 무능력하고 형편없는 인물들로 조롱하고 있어서 짜증이 난 게 아니라 그 우스꽝스러운 경찰을 보고 있는 것 자체가 짜증이었다. 개인적으로 요즘은 영화 속에서 저런 인물들을 보는 게 참 싫다.

다시 한 번 <살인의 추억>과 비교되는 지점인데, 무식하지만 직업적인 책임을 절대 놓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살인의 추억>의 형사들과는 달리 이 작품 속 경찰들은 무능력하면서도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지도 않는다. 짐작컨데 이러한 정서는 그가 직접 조연출로 이영호군 유괴사건을 취재하고 방송했던 경험 때문이 아닐까 싶다. 즉, 이 영화는 철저히 아이를 잃은 부모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영화라 할 수 있다.

4 이 밖에 더 작은 사소한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가진 장점은 공소시효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만들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내 주위 누군가는 '왜 이런 내용을 영화로 만들었는지 몰라. 그냥 TV 르뽀로 만들지.' 라고도 했는데, 난 관심을 끌기 위한 목적이라면 영화는 잘 선택한 장르인 듯 싶다. 이 영화는 극장에서 내려진 후에도 비디오로, DVD로 남을테고 가끔은 케이블 방송에서도 방영이 될테니까. 솔직히 말해 '그럴 때마다 이제와 잡지도 못할 그놈을 최소한 괴롭혀라도 줄 수 있겠지' 하는 마음이다.

p.s.1 설경구가 연기한 한경배 앵커의 모델은 엄기영 앵커가 아니었을까? 말투도 비슷하고 외모도 비슷하다. (뭐, 외모야 설경구 기본틀이니까 어쩔 수 없는 거겠지만)

p.s.2 김남주의 연기는 무난했다고 본다. 설경구의 연기도 좋았다. 그런데, 설경구는 얼마나 더 지나야 이창동 감독처럼 그의 연기를 돋보이게 할 감독을 만날 수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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