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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view & mind

측근들 사이에 부는 싸이질 열풍

갑자기 주변에서 싸이월드 열풍이 불고 있다. 내 미니홈피는 언제 만들었는지 기억도 안나서 관리메뉴에 들어가서 뒤져보니 가입일이 2001년 3월 15일이라고 나온다. 종종 잘 써볼까 싶어서 이것저것 사용해보려 한 적도 몇 차례 있었고, 동호회도 참여했었는데 결국 이렇게 쓰지 않는 걸 보니 나와는 그리 맞지 않았나보다.

이렇게 잊혀지고 있던 싸이질 (그 당시에는 싸이질이라 불릴만큼 유행도 아니었던 듯 싶다)이 측근들 사이에서 다시 바람을 타고 유행하기 시작하고 있다. 사실 조짐은 작년부터 느꼈다고 볼 수 있는데, 아는 사람들 중 싸이월드의 클럽을 개설하는 사람들이 은근히 많아지더니, 최근에 이르러서는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일촌을 맺고, 일촌을 관리하기 위해 일촌들의 미니홈피를 순방한다는 것이다.

사실 그들 입장에서 보면 내가 한 타임 엇박자인 셈인데 - 내가 쓸 때는 알아주지도 않더니 왜 이제야 유행이냐고.

헤어진 옛 애인의 미니홈피를 날마다 몰래몰래 보다가 덜컥 이벤트에 당첨되어 버렸다는 유머를 낳을 정도로 싸이월드의 미니홈피 열풍은 몇년전에 전국을 휩쓸고 지나간 아이러브스쿨의 두번째 버전으로 연상될 정도이다. (사실 내 입장에서는 열풍이 분지 한참 되었다고 생각되지만 측근들 위주로 보면 지금이 열풍 시작이니.)

개인적으로 싸이월드가 일반인의 인기를 끈 이유 중 하나는 연예인들의 가세라고 생각한다. 아이러브스쿨이야 동창이라는 최소한의 매개체라도 있어야 동참이 가능하지만 미니홈피는 1:1, 주인장과 방문객의 관계이기 때문에 특별한 자격이나 조건없이 유명인의 사생활 훔쳐보기의 욕구를 극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싸이월드는 실명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에 훔쳐보고 있다는 느낌을 (본의 아니게) 느끼게 해준다. 그러한 욕구의 표출이 저변확대로 연결된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더 중요한 요소들이 훨씬 더 많다. - 최근에 SK 커뮤니케이션즈에 합병된 것도 여러 요인들 중 하나겠지.)

싸이월드에서는 보고 싶은 사람을 찾는데는 시간과 노력이 오래 걸리지만 (동명이인이 많을수록 더 오래 걸린다) 원치 않는 사람의 방문을 막을 방법은 없다. (싸이월드측에서도 프라이버시 침해 사례를 인정했는지 최근엔 권한 설정이 가능한 게시판 등을 추가하였다.) 그냥 친한 사람들과 알콩달콩 지내고 있는데, 문득 "나 5살 때 친구야, 기억하지? 반가워- 답글 달아줘." 라며 글을 남기거나 기억도 나지 않는 누군가가 "야- 진짜 오랜만이다. 우리 다시 친하게 지내자- 미니홈피 놀러와 ㅋㅋ" 라고 글을 남기면 얼마나 황당할까. 봐서 불편한 사람도 있을 수도 있는데 말이지. 그럼에도 클릭 한번으로 확인이 가능하다면 눌러보고 싶은 생각이 들 것 같다. (그 마저도 Carpenters의 Superstar와는 전혀 다른 느낌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네트 상에서까지 실명을 밝히고, 오프라인의 인간관계를 따지며, 오프라인의 상하관계까지 유지해나가는 것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반대로 온라인에서 만나서 친구가 되기도 하고, 오프라인으로까지 인연이 이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호의적이다. 물론 누구나 그러건 그러지 않건 그건 자유다. 누군가는 실명을 쓰며 오프라인의 자신과 동일시하며 지낼수도 있고, 누군가는 그런 것에 연연해하지 않으며 지낼수도 있는 것이다. 싸이월드 같은 시스템에는 그걸 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도가 없다. (당연하다. 그게 싸이월드의 전략이니까)

그리고, 싸이월드의 인맥 시스템은 한 사용자를 중심으로 온라인에서 더 가까운 사람들을 만들어내고 관리하려는 애초의 의도와는 반대로 한 사용자를 중심으로 덜 가까운 다수의 사람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건 어찌보면 싸이월드의 탓이 아닐 수도 있다. 만들어진 도구를 어떻게 이용하느냐는 당사자의 몫이니까. 인터넷의 기본적인 성격은 개방성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싸이월드 시스템 안에서 사람들은 굳이 더 가까운 인맥들을 형성하기 위해 일촌 개념을 만들고, 프라이버시를 위한다며 일촌만 볼 수 있는 사진첩, 일촌만 볼 수 있는 게시판을 만들어내서 스스로 사람들을 차단시키고 있다. 이런 식의 소통은 결국 끼리끼리의 소통으로 흐르게 되고, 오프라인과 달라질 게 없다고 생각한다. (온라인이 오프라인의 전사(全射)여야 한다고 생각하면 할말은 없지만.) 결국 이러한 접근법은 온라인의 장점과 특성을 간과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싸이월드를 떠났던 이유는 위의 2가지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이 글은 JH님의 '미니홈피는 뜨고 블로그는 지는가?'와 트랙백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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