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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view & mind

내 친구 둘리 20년 뒤…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최규석씨 단편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주름살이 팬 이마, 듬성듬성 난 수염, 허름한 작업복에 모자를 눌러쓴 모습이 영락없는 40대 노동자의 외모다. 기발한 상상력으로 무장한 신인 만화가 최규석(28·사진)씨는 지난해 대한민국 대표급 명랑만화 캐릭터 ‘아기공룡 둘리’의 20년 뒤의 이야기를 그린 〈공룡둘리〉를 발표하면서 단숨에 만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둘리의 앙증맞은 모습만을 기억하던 이들에게 적잖은 당혹감을 안겼던 이 만화로 최규석씨는 ‘2003 독자만화대상’에서 신인과 인디부문 상을 받았다. 〈공룡둘리〉와 함께 작가 최씨가 그동안 발표한 만화들이 이번에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길찾기 펴냄·8800원)라는 이름의 단편집으로 묶여 나왔다.

“둘리는 굉장히 슬픈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룡이기 때문에 착하게 살아도 세상에 편입될 수 없는 절대고독의 처지에 있죠. 인간이 성장하는 것처럼 둘리도 크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에서 원래의 캐릭터들이 가진 성격을 그대로 가져와 이야기를 꾸몄어요.”

공장노동자 된 둘리는
프레스에 손가락 잘려
더이상 마법 쓰지 못하고
또치는 동물원서 몸팔고…
콜라맨 등 발표작 묶음으로


〈공룡둘리〉에서 공장노동자가 된 둘리는 프레스기에 손가락이 잘려 더는 마법을 쓰지 못하고 공장에서도 쫓겨나는 기구한 운명을 맞는다. ‘고길동’은 외계인 ‘도우너’의 사기로 화병에 걸려 죽고, 길동의 아들 철수는 그런 도우너를 외계연구소에 팔아넘긴다. 허영심 많던 타조 ‘또치’는 동물원에서 몸을 팔고, 악동 ‘희동이’는 감옥을 제집 드나들듯 한다. 고달픈 현실에서 피폐해진 인물들을 그리지만 씁쓸한 웃음을 짓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둘리처럼 웃기는 캐릭터를 심각하고 진지하게 표현하는 것도 코미디”라고 말하는 작가는 둘리가 “외국인 노동자일 수도, 진화를 멈춘 한국 만화판에 대한 은유일 수도” 있단다.

“원래 밝은 것을 잘 못 그린다”는 최씨는 2002년 동아엘지국제만화페스티벌 극화부문 당선작인 〈콜라맨〉과 〈선택〉 등에서는 약자를 밟고 안정적인 삶을 구가하는 인간 군상들에 대한 풍자를 담았다. 〈콜라맨〉은 정신지체 장애인을 노리갯감으로 삼고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르고 마는 한 초등학생을, 〈선택〉은 일상적 폭력이 내면화한 남자가 용역직원이 돼 월드컵경기장 건설을 위해 철거민들에게 각목을 휘두르는 상황을 그렸다. “착한 사람들도 대부분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 삽니다. 억압을 받다가도 자기가 그 위치에 가면 억압을 가하는 존재로 바뀌는데, 양면 모두 인간의 진실된 모습인 것 같아요.”

신작 〈사랑은 단백질〉은 닭집 사장이 닭이고 자신의 새끼를 튀겨서 파는 웃지 못할 상황을 묘사한 블랙코미디다. 닭집 사장의 하소연에도 돈을 주고 닭을 산 인간들은 자기 권리를 주장하며 닭다리를 놓고 서로 눈치를 본다. 작가는 하얗게 빻은 닭뼈를 하늘로 날려 보내는 장면을 통해, 현실의 고통이 변함없음에도 추억이라는 포장에 두루뭉술 싸여 잊혀지고 마는 세태를 패러디했다.

지난해 상명대 만화학과를 졸업한 최씨는 자신의 만화가 독자를 고려하지 않는 90년대식 언더그라운드만화나 본격 상업만화 모두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다고 말한다. 화면의 독특한 질감을 살리기 위해 종이 밑에 벽돌이나 나무를 대고 프로타주를 시도하는 아이디어를 발휘하는 그는 단편으로 기초를 다진 뒤 1~2년 뒤쯤 장편만화에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글 이호을 기자 helee@hani.co.kr

사진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기사 출처 : 한겨레


짝짝짝.
아기공룡 둘리의 그 맑고 경쾌함 속에 숨어있던 쓸쓸함과 소외감의 정서를 극대화 시킨 버전.

지나고 나서 생각컨데, 사실 그 당시의 명랑만화들은 현실과 어울리지 않았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그런 이야기만 보며 언제나 착하고 즐겁게 사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하도록 주입당한 것 같기도 하다. - 정확하게는, 주입당했는지 내 스스로 주입한 건지 모르겠다.

그 당시 명랑만화들의 상상력은 상상력의 일부분이 거세된 듯한 느낌이라는 것이다. 힘든 현실을 떠올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사회의 부조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지 않는 선에서,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는 선에서 코미디와 액션, 이야기가 펼쳐졌다. 최근의 우리나라 영화들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건 이러한 금기 아닌 금기를 깨기 시작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물론 만화시장 정체는 꼭 이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공룡둘리'는 악인이 없는 - 아니, 모두가 악하기도, 약하기도 한 심성을 일부분 소유하고 있는, 실수도 하고 좌절도 하는 그런 캐릭터들이 나와 현실감있는 공간감을 만들어준다.

루저에 대한 이야기들은 대부분 마음 속에 울림을 만든다. 사실 루저에 대한 이야기들은 대부분 진짜 루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삶을 경험하고, 희망과 절망을 함께 가지고 나아가는 사람들을 틍해 '진짜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