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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harge my life

생각없이 집에 들어가는 길

지하철을 탔다. 4108호 칸에 탔다. 자리가 텅텅 비었다. 가운데 좌석열의 제일 끝자리에 앉았다.

다음역에서 눈이 불편한 남자가 지팡이를 더듬거리며 다가와 내 옆자리에 앉았다. 눈이 불편한 사람들은 시각적으로도 바로 티가 난다. 내 앞에 서 있던 중학생 쯤 되어보이는 아이와 내 옆옆 자리에 앉아있던 20대 가량의 여성이 갑자기 다른 칸으로 이동을 한다. 자리가 하나 비었는데 아무도 앉으려고 하지 않는다.

때마침 내 mp3 플레이어에서는 Coldplay가 온라인 상에 무료로 배포한 LeftRightLeftRightLeft 앨범 수록곡 Fix You가 흘러나온다. 이어폰 속 사람들이 합창을 한다.

숙명여대를 지나가니 한떼의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성들이 지나간다. 눈이 불편한 남자 옆의 자리만 역 4개를 지나칠 때부터 비어있고 지하철 칸에 서 있는 사람은 8명이 넘지만 아직 아무도 앉지 않는다. 내 옆의 남자는 눈이 보이지 않고 이 지하철 칸에 서 있는 승객들은 빈 자리가 보이지 않나보다.

잠깐 딴생각을 하다 환승역을 지나쳐버렸다. 다음역에서 내려서 왔던 길을 돌아간다. 이상하게 이 환승역은 알면서도 지나칠 때가 많다. 이번달에만 벌써 2번째다.

환승역에 도착했는데 지하철이 이미 도착해있다. 뛰어서 탈까 말까 고민하는 사이에 문이 닫힌다. 지나가는 지하철의 창문 안을 들여다보니 자리가 듬성듬성 비어있다. 아쉽다.

벤치에 앉아 다음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는데 한 할아버지가 옆자리에 앉는다. 자판기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그 향이 진하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것 같다. 갑자기 배가 고프다.

이제 집까지 가는 지하철을 탔다. 이번 칸은 3004호다. 한 아저씨가 선풍기 커버를 팔고 있다. 1개에 천원. 요즘 부쩍 지하철 안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난 것 같다.

지금 흘러나오는 음악은 엘리엇 스미스의 A Distorted Reality Is Now A Necessity To Be Free 이다. 이 곡이 수록된 그의 유작앨범 From A Basement On The Hill 이 나왔을 때가 생각난다. 유명해질까봐 영화음악 제의도 뿌리치던 그가 죽고 나서는 누군가의 손에 의해 유작 앨범이 나오는 게 참 묘했다.

내 앞 쪽에 빈자리가 났지만 서 있는 승객들이 발견하지 못했는지 아무도 앉지 않는다. 내 옆에 앉은 할머니가 멀리 있는 다른 할머니를 향해 연신 팔을 흔들며 빈자리가 있다고 알려준다. 서로 전혀 모르는 사이가 분명한데, 자리를 챙겨준다. 멀리 있던 할머니가 수신호를 알아듣고 자리로 와 앉는다.

시간이 어정쩡하기 때문인지 새로 타는 사람들보다 내리는 사람들이 많아서 금새 자리가 텅텅 빈다.

머리 속으로 오늘 해야할 일을 차근차근 정리하고 있는데 지하철이 지상을 달리는 구간으로 들어왔다. 햇볕이 좋다. 지하철 안의 모니터에 김미화가 나와서 아프리카에서의 경험이 소중했다고 이야기하는데 순간 김미화가 Afreeca에서도 BJ를 한 적이 있었나 잠시 의아해한다. 물론 그 아프리카가 아니겠지.

벌써 내려야 할 역에 도착. 참 생각없는 날이다.

iPod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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