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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oked on music

글렌과 마르케타 (영화 원스) 그리고 데미안과 리사

영화 <원스> (Once, 2006)는 아일랜드에서 만들어진 아주 작은 음악 영화입니다. 제작비도 얼마 안들었을 뿐더러 등장인물 수도 매우 적고 이야기도 단촐하지요.

하지만 영화가 주는 여운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여느 음악 영화 혹은 뮤지컬 영화와는 다르게 음악은 이야기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그 역할을 톡톡히 해냅니다. 거리의 악사와 한 여인이 만나 음악적인 그리고 인간적인 관계를 만들어가는 게 이 영화의 내용이거든요.


Glen Hansard - Say It To Me Now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하여 저도 영화를 봤는데 역시 좋더군요. 음악도 멋지고 이야기도 좋고 카메라가 인물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따뜻했어요. 전체적으로 사랑스러운 이야기지요.

영화가 좋았던 이유 중 하나는 주연을 맡은 글랜 한사드 (Glen Hansard)와 마르케타 이글로바 (Marketa Irglova)는 실제로 뮤지션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실제로 부르는 음악이 더 깊게 느껴졌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글랜 한사드는 아일랜드 밴드 더 프레임즈 (The Frames)의 프론트맨이고, 마르케타 이글로바는 체코 출신의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라고 하더라고요. 게다가 이 영화의 감독을 맡은 존 카니 (John Carney)는 왕년에 베이시스트였다고 하고요.


Glen Hansard & Marketa Irglova - When Your Mind's Made Up

영화를 보면서 글랜 한사드를 보면서 데미안 라이스가 떠올랐어요. 둘 다 아일랜드 출신이기도 하고, 포크를 중심으로 포크/락을 할 뿐더러 글랜 옆에 마르케타가 있듯이 데미안 옆에는 리사가 있었으니까요. 실제로 음악의 정서적인 분위기에도 공통점이 있고요.


잠깐 데미안 라이스 이야기를 하자면, 저는 데미안 라이스 (Damien Rice)가 영화 <클로저> (Closer, 2004)를 통해 Blower's Daughter로 알려졌을 때부터 팬이었어요. 그의 구구절절한 이별과 사랑 노래들이 참 마음에 들었죠. 1집 <O>와 2집 <9> 모두 너무 좋아합니다.

데미안 라이스는 따로 밴드의 이름으로 앨범을 내지는 않지만 언제나 함께 활동하는 밴드가 있죠. 그 중에서 (제 생각으로는) 데미안 라이스의 음악에 커다란 역할을 하는 멤버는 단연 리사 해니건 (Lisa Hannigan)입니다.

그녀는 때론 자신이 메인보컬인 것처럼 앞서서 노래를 장악하기도 하고, 대체로는 데미안 라이스의 보컬을 뒤에서 받쳐줍니다. 실제로 공연장에서는 그녀의 인기가 더 클 정도라고 하죠.


Damien Rice - Volcano (live at Four Seasons)

뭐랄까 그녀가 빠진 데미안 라이스는 상상만 해도 뭔가 허전해요. 물론 데미안 라이스 혼자 부르는 곡들도 많지만 그녀가 코러스를 넣거나 함께 노래하는 곡들은 적어도 그녀의 목소리가 들어가서 완벽해진다고 생각해요. 저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는 않을 거예요.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리고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올해 초에 데미안 라이스와 리사 해니건은 헤어졌습니다. 둘이 사귀었다는 게 아니라 둘은 이제 더 이상 함께 음악을 하지 않는다는 거죠. 리사 해니건도 이제 그녀의 이름을 걸고 음악활동을 하기 위해 헤어졌다는 게 공식적인 이유입니다. 하지만 함께 있던 그들을 좋아했던 저를 비롯한 팬들은 별의별 상상을 했었죠.


Damien Rice - I Remember

그들은 이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예전에' 함께 음악을 하던 사람들로 남겠죠. 마치 영화 <원스> 속에서 글렌과 마르케타가 길에서 만나 서로 가까워졌다가 서로 좋은 인상을 남기고 자신의 길을 떠나는 것처럼요. 영화를 보면서 자꾸 데미안과 리사가 생각났던 이유는 그래서였어요.

아아. 데미안 라이스는 그만으로도 훌륭한 가수지만 그의 옆에서 함께 노래를 했던 리사도 좋아했던 팬의 입장으로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다음 앨범에서도 함께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어요. 하지만, 훗날 돌아봤을 때 그들이 내린 결정이 데미안 라이스에게도, 리사 해니건에게도 좋은 결정이었길 바래요.

p.s.


We love you Lisa~

좋지 않은 이유로 헤어졌다는 루머도 있지만 데미안은 이렇게 그의 공연 중에 리사를 위해 팬들의 목소리를 음성 메시지로 녹음하는 걸 보면 루머는 루머일 뿐인 듯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