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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dio & sound

생각지 못했던 번안곡/리메이크/표절(의심)곡 몇 곡

아래 스테이시 큐의 Two of Heart를 번안한 원더걸스의 텔미 (Tell Me)에 대해 사람들이 적은 글들을 보다가 예전부터 생각했던 것들을 적어봅니다.

솔직히 예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히트하기 시작한 포크송들 중에는 정말 번안곡들이 많잖아요. 펄시스터즈와 트윈폴리오가 쌍두마차라고 할 수 있겠죠. (물론 펄시스터즈는 후에 신중현이라는 거장을 만나 가요사에 남는 많은 곡들을 발표하게 됐지만 말이죠.)

저 같은 경우는 처음 음악을 좋아하고 듣기 시작할 때는 그렇게 많은 곡들이 번안곡인 줄 몰랐어요. 점점 자라면서 '아, 이 곡은 번안곡이구나-' 하며 알아간 노래들이 많았지만, 어떤 곡들은 '정말? 이게 번안곡이야?' 했던 곡들이 있었죠. 아무래도 나름대로 한국적인 곡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번안곡일 거라 차마 생각하지 못햇던 곡들이겠죠.

번안곡이라는 표현은 원래 곡을 그대로 쓸 뿐더러 가사까지 그대로 번역하는 곡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이제까지 우리가 번안곡이라 불렀던 곡들을 보면 가사가 일치하지 않습니다. 맥락이 아예 다른 가사들도 많지요. 즉, 가사의 일치 여부는 번안곡이니 샘플링이니 하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는 뜻이죠. 사실 가사를 그대로 번역하는 게 훨씬 더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당시 나름대로 충격 아닌 충격(^^)을 받았던 곡들을 간단하게 추려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서수남, 하청일 - 팔도유람
Hank Snow - I've Been Everywhere
아니, 한일자동펌프와도 같이 속사포처럼 가사를 쏟아내는 이 친근한 곡이 번안곡이었을 줄은 정말 몰랐어요.


나훈아 - 최진사댁 세째딸
Al Wilson - The Snake
이건 아예 신민요풍이잖아요. 당시 한국에서만 들을 수 있는 독특한 곡이라 생각했어요.

전영 -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천사라면
Al Bano & Romina Power - Il Ballo Del Qua Qua
가사도 그렇고 아기자기한 구성이 참 재밌다고 생각했는데 원래는 오리들의 춤에 관한 노래였다는 거죠. 오리 꽥꽥꽥-

이용복 - 어린시절
Clint Holmes - Playground On My Mind
어느 유명한 동요 작곡가의 곡인 줄 알았습니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요즘엔 나무자전거의 '보물'이라는 곡이 이 곡의 분위기와 비슷한 것 같아요. 마빡이의 그 노래 말이죠. ^^

다들 아시다시피 이 시기를 지나 80~90년대에는 번안했다는 사실을 숨기고 만든 (것 같은) 곡들이 많죠. 예, 표절(시비)곡입니다. 사실 예전 번안곡 범람 시절에도 저작권료를 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 어쨌든 다른 사람의 곡을 가져다 썼다는 건 밝혔잖아요. 하지만, 80~90년대에는 그 사실을 살짝 숨기죠. 역시 (제 기준에 있어서) 대표적인 곡 몇 개를 대자면 이런 게 있겠죠.

이승철 -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
Casiopea (카시오페아) - Me Espere
처음 앨범 재킷에는 자기가 직접 작곡했다고 적어놨었죠. 나중에 이 곡을 빠른 버전으로만 부르는 게 마치 '이건 Me Espere와는 다른 느낌의 곡이야' 라고 하는 것 같아보였어요.

김현철 - 나를
T-Sqauare (티스퀘어) - Twilight In Upper West
우리나라 음반사에 길이 남을 만한 앨범으로 데뷔를 했던 김현철을 좋아했던 저에겐 전체가 아닌 후렴구만 같은 이 곡이 나름대로 충격이었죠.


서태지와 아이들 - 난 알아요
Milli Vanilli - Girl You Know It's True
이건 뭐 워낙에 많은 논란이 있었기 때문에 생략합니다.

이외에도 개인적으로 인상깊었던 곡은 별다른 설명도 없이 - 밑도 끝도 없이 너바나 (니르바나, Nirvana)의 Smell Like Teen Spirit 리프를 흉내낸 전주를 깔며 시작한 터보의 Live Is 라는 곡입니다. 그 쓰임새가 너무 태연스러워서 놀랐었죠. ^^ 핑클의 영원한 사랑 전주에서도 Carenters (카펜터스)의 For All We Know 를 아무렇지도 않게 인용하는 걸 처음 들었을 때와 비슷한 충격이었죠.

그러다가 이제 2000년대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샘플링과 일부분을 표절하는 형태 혹은 원곡과 비슷하게는 만들지만 리메이크도 아니고 표절도 피해가는 애매한 형태의 곡 그리고 굳이 리메이크라는 걸 밝히지 않는 곡들이 대거 등장합니다. 사실 이쯤되면 그냥 깨끗하게 저작권을 사고 작업을 한 다음 그걸 밝히는 게 맞는 것 같긴 한데, 이게 상업적으로 보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나봐요. (제 기준에 있어서) 대표적인 곡들을 꼽아보죠.

왁스 - 지하철을 타고
Kylie Minogue (카일리 미노그) - Can't Get You Out Of My Head
가요스럽지 않다고 느끼기도 전에 '이건 카일리 미노그 노래의 변주인건가?' 싶었던 곡입니다. 당연히, 표절이라고 하는 건 아니죠.

싸이 - 새
Bananarama (바나나라마) - Venus
이건 원곡이 너무나 유명한 곡이라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만든 곡인 줄 알았는데, 저작권료를 지불할 방법을 찾지 못해 그냥 썼다고 인터뷰한 기사를 보고 제대로 황당해 했던 경우입니다. 싸이의 '새'가 상업적으로 만들어져 팔린 곡이 아니라면 상관이 없었으리라 생각해봅니다.

김장훈 - Goodbye Day
來生たかお (키즈키 다카오) - Goodbye Day
김장훈이 부르는 게 자연스럽고 어울려서 마냥 원곡인 줄 알았지요.


자전거를 탄 풍경 - 너에게 난 나에게 넌
Fastball - Out Of My Head
이 곡은 저작권을 주고 샀는지 아닌지는 모릅니다만 역시 자탄풍의 곡이 원곡인 줄 알았어요.

마지막으로, 저는 번안곡이니 리메이크니 샘플링이니 하는 행위를 나쁘거나 후지거나 자제해야 할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위의 몇몇 곡들을 포함해 표절 혐의를 받는 곡들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과 리메이크라 하더라도 밑도 끝도 없이 이루어지기 보다는 창작곡 정도의 의미를 지녀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할 뿐이죠.

어쨌든 이상 원더걸스의 텔미 (Tell Me) 덕분에 적게 된 글이었습니다. :)

p.s.1 물론 리메이크의 의미라든지, 표절 여부에는 논란이 있기도 하고 또한 어느 정도는 자의적인 판단이 들어있기도 하죠.
p.s.2 위에서 언급한 곡들 중에도 어떤 곡들은 분명 리메이크/번안곡이라는 걸 처음부터 밝혔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큰 관심이 없어서 몰랐을 수도 있다는 얘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