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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harge my life

가을, 타는 냄새

문득 몇 년 전 후배와 술 한잔 곁들이며 볼 생각으로 집 근처 비디오 가게에 가서 디비디 타이틀을 몇 장을 빌려오던 날이 생각났다. 9월 즈음이었을까?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정육점 포인트 카드를 보며 신기해 했던 것도 같고, 가격은 비싸지만 빵맛 좋은 동네 빵집들이 체인점 빵집 때문에 점점 망해가서 안타깝다는 이야기도 슬쩍 흘리다가 후배가 먼저 그랬는지 내가 먼저 그랬는지 '바람 속에서 타는 냄새가 난다' 는 말을 꺼내고 동의를 했었다.

가을이 되면 코끝에 닿는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타는 냄새가 난다. 오바를 하는 게 아니라 코를 킁킁 거리며 이거 정말 어디 불이라도 났나 싶을 때도 있을 정도이다. 건조한 공기 사이로 느껴지는 시원한 바람 - 여름의 무더위도 지났고, 살짝 추울 때 먹으면 맛있는 따뜻한 음식들도 살짝 떠오를만한 그 선선함.

이러한 가을 냄새를 샤워할 때도 느끼곤 하는데, 여름 내내 후덥지근한 날씨를 피해 찬물에 후다닥 샤워를 하고 얼른 나와 선풍기 앞에서 물기를 말리던 평상시와는 달리 조금은 지친 다리를 만지며 나도 모르게 따뜻한 물을 틀었을 때 그 물줄기 끝에서 느껴지는 무언가 따스한 냄새가 바로 그것이다.

아마도 따뜻한 물이 건조한 공기 속을 가를 때 나는 무언가가 있는 모양인데, 어렸을 적 빨간 다라이에 뜨거운 물을 받아놓고 바가지로 차가운 물과 잘 섞어쓰던 기억부터 군시절 몇 일 동안 야외에서 혹한기 훈련을 받다가 새로 지어진 샤워장에서 조금이나마 뜨거운 물을 몸에 끼얹으며 피로를 풀던 기억까지 차례대로 생각이 난다.

보통 이렇게 생각이 생각에 꼬리를 물고 나오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기 마련이어서 (마치 이 글처럼) 얼른 마무리를 하고 나와버렸다. 보통 이런 날은 어디 음악이라도 하나 잡히면 무한반복시켜 들으며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곤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샤워를 하는 짧은 순간에 몸이 알아버렸다. 가을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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