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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dio & sound

Damien Rice의 앨범 9을 듣고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번 앨범 "9"는 전작 "O"의 연장선상에 있는 앨범이며 "O"보다 살짝 힘을 뺀 앨범이다. 사실은 잘 모르겠다. 힘을 뺀 건지, 안 뺀 건지. 소포모어 징크스라는 게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건 어떤 알지 못하는 어떠한, 신기한 이유 때문이 아니라 준비하는 기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데미안 라이스는 끊임없이 공연을 통해, 여러 데모 버전의 곡들을 통해 곡을 완성해 나가는 스타일인 듯 하다. 대단한 자신감이라고 해야할까, 아니면 그저 그의 스타일이라고 해야할까. 그런 의미에서, 데미안 라이스의 팬으로서 이번 앨범은 (단지 부틀렉을 통해 익숙한 곡들이 섞여 있다는 점에서) 살짝 아쉽기도, 익숙해서 좋기도 했다. 결론은? 충분히 만족스럽다.


Damien Rice & Lisa Hannigan - 9 Crimes (The Tonight Show with Jay Leno Live)

앨범의 첫 트랙 "9 Crimes"는 그의 앨범을 기다린 사람들의 귀를 충분히 잡아끌만한 매력적인 곡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다른 사랑에 빠진 두 연인의 심정을 '범죄', '총' 이라는 비유로 절묘하게 표현한 곡이다. 두번째 곡 "Animals Were Gone" 역시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는 가사가 담긴 서정적인 트랙이다.

▶ Damien Rice - The Animals Were Gone (live) 들으러 가기

그리고 이어지는 곡은 "The Blower's Daughter part II"라고도 알려졌던 (그리고, 실제로도 The Blower's Daughter처럼 3번째 트랙에 위치해 있고, 키도 같은 E키인) "Elephant".

"The Blower's Daughter"가 매력적이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Can't Take My Eyes Off You"라는 곡에 쓰인 후렴구의 가사와 멜로디를 - 창작적이라는 측면에서 정말 재치있게 그리고 정서적으로는 전혀 그 반대로 - 우울하게 변주해낸데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Elephant"는 그렇게 기댈 곳이 없으면서도 그 정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들을 수록 매력 있는 트랙이지만 곡의 구조나 분위기가 The Blower's Daughter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는 곡이다. (The Blower's Daughter를 통해 데미안 라이스를 알던 사람들에게는 조금 기대에 못 미치는 곡이었나 보다. 난 이 곡이 좋은데 말이지.)


Damien Rice - Elephant

"Rootless Tree"는 오랫동안 부틀렉 앨범에서 "Beat My Drum"으로 알려졌던 "Me, My Yoke + I"과 함께 강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앨범 "O"에서는 한 곡에서의 변화가 많았다면 이번 앨범은 곡마다 역할이 분명하다고나 할까? 그런만큼 분명한 분위기가 만들어지지만 역시 그만큼 한 곡 내에서 드라마틱한 변화는 줄어들었다.

위의 두 곡과 반대로 "Dogs"와 "Coconut Skins"는 이번 앨범을 그나마 전작 "O"와 구분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는 트랙인데, 그 구분점은 바로 "포크 (folk song)"이다. 음악 뿐만 아니라 가사 역시 전형적인 포크 성향을 띄고 있다. 곡마다 역할이 분명하다는 건 역시 이 두 곡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 Damien Rice Lisa Hannigan Vicar Street 29/08/2006 PART 1 들으러 가기
▶ Damien Rice Lisa Hannigan Vicar Street 29/08/2006 PART 2 들으러 가기


Damien Rice - Coconut Skins (Live on Jools Holland)

반면 이번 앨범의 장점 중의 하나는 첫 곡과 마무리 곡이 매우 뛰어나다는 점이다. 매력적인 싱글 "9 Crimes"로 시작해서 "Accidental Babies"과 "Sleep Don't Weep"이 마무리를 해준다. "Accidental Babies"는 다른 사람의 연인을 사랑하는 사람의 노래이다. 그런데 노래를 부르는 화자 역시 이미 사랑하는 연인이 있는 상태 - 그래서, 그들은, 결국 행복할 수 있을까?

흡사 "Cold Water part II"라고 생각되는 "Sleep Don't Weep"은 이번 앨범에서 전작의 마지막 곡 "Eskimo"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데 별다른 기교가 느껴지지 않으면서도 구성되는 묘한 분위기가 일품이다.


Damien Rice - Accidental Babies (live @ Toronto)

이 앨범의 전체적인 기조는 전작 "O"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비교 아닌 비교를 하게 된다. 비교의 대상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이전 앨범에서의 데미안 라이스이다. 이번 앨범에 대한 평가는 팬들이 데미안 라이스와 리사 해니건의 어떤 모습을 기대했었는지를 알아보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앨범에서도 "만약", "그 때", "왜 우리는", "그런데 우리는"에 대해 읇조리는 데미안 라이스와 리사 해니건과 차분히 뒤에서 함께 하는 첼로 연주는 여전히 감미로우며 팬의 입장에서 보자면 쓸쓸한 정서에 파묻혀 그러나 전작보다는 조금은 익숙해진 마음으로 감상해도 될 듯 싶다.



folkier & milder but still heartfelt & heartbreaking for 9 of Damien Rice

acoustic mind, technically

나의 추천

Accidental Babies
9 Crimes
Elephant
Sleep Don't Weep
Rootless Tree

(추천이라는 단어를 쓰기에는 너무 많나?)

그리고,

1. 아홉번째 곡 "Accidental Babies"의 가사는 슬프면서도 유머러스하다. 아니, 그냥 하는 이야기로 지나가기에는 뼈가 있다.

내가 당신을 울리고 있다는 걸 알아 / 그리고 가끔 당신이 죽고 싶다는 것도 알아 / 하지만 당신은 나 없어도 살 수 있어? / 만약 그렇다면 (나를 떠나) 자유롭게 살아 / 그렇지 않다면 나를 위해 그를 떠나 / 우리 중 하나가 갑자기 (우발적으로) 애라도 갖기 전에 말이지 / 우리가 사랑하는 동안에 말야

Well I know I make you cry / And I know sometimes you wanna die / But do you really feel alive without me? / If so, be free / If not, leave him for me / Before one of us has accidental babies / For we are in love

이 재미없는 농담을, 농담 같지도 않은 애처로움을, 사람들 살아가는 이야기를 이렇게 툭 하니 풀어놓다니.

2. 두번째 곡 "The Animals Were Gone"에서는 위의 가사의 단어를 살짝 곡들에 연관성을 두기도 한다. (We could make babies and accidental songs)

3. 앨범을 듣다보면 전작 "O"의 트랙들과 일대 일로 매칭할 수 있을 정도의 트랙들이 귀에 들어오고, "O"의 이것과 저것을 합치면 "9"의 어떤 트랙이 되겠구나 하는 정도의 짐작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이 앨범은 "O part II" 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