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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ly cinema/talk about movie

The Assassination of Richard Nixon - 어느 현대인의 죽음

aka 리차드 닉슨의 암살, 대통령을 죽여라

If I am lucky, the action I am about to take will show the powerful that even a grain of sand has in him the power to destroy them.

내가 운이 좋다면, 내가 취하려는 이 행동은 한톨의 모래라 하더라도 그 안에 그들 (권력자들)을 무너뜨릴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것을 보여줄 것입니다.

아내와는 이혼하고 (정확히 말하면 이혼 당하고), 직장에서는 하기 싫은 거짓말을 하며 일을 해야하고 (고객을 속여야 하고), 친구와의 사업은 성공할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 주인공 샘.

겉으로 보기엔 적당히 괜찮은 사람이지만 관객은 그가 세상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루저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숀 펜이 연기한 샘은 참 묘한 캐릭터예요. 그렇지만 매우 현실적인 인물입니다. 그가 가진 생각이 확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하지도 않고, 그가 품은 분노의 총구 끝이 제대로 된 대상을 겨누지도 않을 뿐더러, 스스로를 대하는 기준과 다른이를 대하는 기준이 일치하지도 않는 그런 흔한(?) 인물 말이죠.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거짓말을 시켜대는 상사를 싫어하지만 오히려 그의 편이어야 할 부인에게는 버림 받은 인물이죠. 흑인 친구를 갖고 있고 흑인 인권단체 (Black Panthers)에 찾아가 '얼룩말'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길 조언하기도 하지만, 막상 자신은 은행 대출 또한 제대로 받지 못합니다. 그가 느끼는 불만은 콕 집어 이야기하면 졸지에 '사회부적응자'가 되어버리는 수준으로 넓게 퍼져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그는 실제로 그렇게 (무능력자로) 보이기도 하죠. 그러던 그는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사실에 매우 분노하고 용단을 내리기에 이릅니다.

이 영화는 1972년의 미국을 그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현재의 한국의 모습도 느껴집니다. 정직보다는 융통성이 더 중요하고, 진실보다는 결과가 더 중요하고, 마음보다는 돈이 더 중요하고, 내면의 모습보다는 보여지는 게 더 중요하게 생각되는 그런 현실 말이죠. 이런 가치들에 적응하지 못하고 (눈치없게) 입바른 소리 했다가는 '아직도 철부지' 소리를 듣게 되는 그런 현실 말예요.

또한 영화는 그 반대의 모습들도 보여줍니다. 스스로 노력은 하지 않은 채 입 (키보드)만 앞선 채 떠드는 사람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 '세상은 그런 것이니...' 하면서 변화를 포기하거나 반대로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 같은 것들 말이죠.

감독의 연출과 숀 펜의 연기가 표현하는 건 뭘까요?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원인도 제대로 찾지 못하고, 해법 또한 엉망인 '루저'의 모습을 그린 걸까요, 아니면 부조리한 현실 그 자체를 보여주려 한 것일까요? 아니면 그런 것들이 엉켜있는 그 상황을 그저 담담히 보여주려 한 것일까요? 영화가 끝까지 허무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인 듯 합니다. 개인도, 사회도 뭔가 어긋나 있는데 어떤 쪽으로도 나아가지 못한 채, 희망이란 건 전혀 보여주지 않은 채 영화는 끝이 나거든요.

절대적인 지식과 지혜를 가지지도 못하고, 특출난 능력과 인맥도 없는 보통의 사람들은 '모가 되든 도가 되든' 샘과 같은 용단을 내려보는 게 좋을까요, 아니면 그냥 사회에 억지로라도 몸을 끼워맞춰가며 튀는 '루저'보다는 조용히 비굴한 '현대인'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게 좋을까요. 물론 답은 없지만 말이죠. 갑자기 빨간 알약과 파란 알약이라는 분명한 선택을 강요받았던 <매트릭스>의 네오가 정말 행복한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p.s. 작년에 보고 싶어했지만 연이 닿지 않아 보지 못했던 영화였습니다.

p.s.2 <택시 드라이버>와 그 영화의 주인공 트래비스 (로버트 드 니로 분)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영화 자체도, 인물도 조금 다른 버전이지만요.




보통의 영화라면 mad와 true가 바뀌어 있어야 할 듯한 카피가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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