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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a & world/and more

샘플링의 시대? 같은 코드, 다른 음악

언젠가부터 많은 가요들이 대중들에게 공개하자 마자 표절이니 아니니를 따지는 게 일종의 놀이 문화가 된 듯 합니다. 반대로 뮤지션들은 곡을 내고는 변명을 하기 바빠졌고요. 개인적으로는 서태지와 아이들을 통해 본격 댄스 음악이 히트를 하기 시작한 이후인 것 같아요. (지금도 여전히 댄스, 힙합 장르에서 논란이 많죠)

서태지와 아이들 스스로 그들의 데뷔곡 '난 알아요' 가 표절 시비에 휘말렸는데, 현재까지도 논란이 끊이지 않는 샘플링이라는 작법이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기 때문일 겁니다. 샘플링 씨디를 구입하거나 악기의 음원을 라이센싱 받아서 만든 음악이 아니라면 리메이크든 샘플리이든 원작자 표기가 제대로 되어있어야 하지만, 이게 지금까지도 잘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논란을 가중시키고 있죠.

'Cat Scratch Fever' - Ottawa 2002
'Cat Scratch Fever' - Ottawa 2002 by Mikey G Ottawa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어찌 됐든 대중들이 표절 여부를 판가름하는 평가 기준 역시 예전부터 요즘까지 상당히 단순합니다.

1. 들어본 적이 있는 멜로디인가
2. 들어본 적이 있는 코드웍인가
3. 만약 1번, 2번이라면 작곡자 표기가 어떻게 되어있는가
4. 뮤지션이나 기획사에서 뭐라고 말하는가

뭐 거의 이 정도겠죠. 

왜 샘플링 혹은 리메이크를 할까요? 사실 리메이크나 샘플링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트렌드가 되어버렸습니다. 정말로 비틀즈 이후로 더이상 새로운 음악은 나오기 힘든 걸까요? 멜로디나 코드웍이 음악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는 없지만, 아무래도 점점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건 어려운 일이겠지요. 예, 창작은 어렵고도 괴로운 작업이죠.

흔히 '대중들이 좋아하는 코드 (머니 프로그레션이나 머니 코드라고 하기도 한다죠)는 이미 한정적인데 비슷한 곡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것 아니냐?' 라고 강하게 묻는 분들에게 '코드웍은 같아도 충분히 독자적인 매력을 가진 곡들이 많다' 라는 답변이 될 만한 영상을 네 개 준비했습니다.

첫번째는 예전에 제가 올렸던 Rob Paravonian의 파헬벨 이야기 의 동영상입니다.


8개의 코드 D - A - B - F# - G - D - G - A 가 무한반복 되는 파헬벨의 캐논 변주곡과 동일한 팝/락/포크 음악들이 많다는 사실을 소재로한 코미디 영상입니다. 유명한 곡들 정말 많죠?

두번째 영상은 The Axis of Awesome 이라는 밴드의 메들리곡인 4 Chords 입니다.


저 위의 코미디언이 했던 코미디를 더 체계적으로 승화시킨 곡이로군요. 코드진행은 I - V - vi - IV 입니다. 위처럼 코드 D를 기준으로 한다면 D - A - Bm - G 정도 되겠군요. 아예 밴드를 이뤄서 곡을 모아 녹음하고, 라이브 공연까지 한다는 게 재밌어요.

그나저나 이 곡들은 모두 다 똑같은 코드웍을 사용하고 있는데, 서로 표절 느낌이 나나요?

세번째 영상은 mathyou9라는 개인이 만든 4 Chords, 65 Songs 입니다.


위의 The Axis of Awesome 의 곡을 듣고 아예 자기 스스로 곡들을 모아보자고 해서 작업을 했다고 해요. 사용된 65곡의 템포를 하나의 빠르기로 맞추고, 피치 (음의 높낮이)도 모두 일괄적으로 통일시켰습니다.

계속 듣다 보면 '도대체 저 I - V - vi - IV 진행이 안쓰인 곡이 있긴 한 거야?'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네번째는 유리상자의 일명 섞어송입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유리상자는 예전부터 이런 재치있는 시도를 많이 보여줬었죠. 공연장에서도, TV에서도 말이죠. 물론 유리상자가 연주한 원곡들의 코드웍은 서로 정확히 일치하는 건 아니고 불협화음이 나지 않게 살짝살짝 고친 게 있죠.

그래도 가요만을 소스로 해서 저렇게 찾아내서 구성하는 건 대단한 능력이예요. 비슷한 코드웍을 갖춘 곡들 중에서 갖춘 마디로 시작하는 곡과 못갖춘 마디로 시작하는 곡을 대비시키는 센스도 좋고요.

위의 영상들을 '코드웍보다는 멜로디를 어떻게 만드느냐가 더 중요하다' 거나 '멜로디가 다르면 표절이 아니네' 라고 받아들일 필요는 당연히 없습니다. 게다가 더 위의 수많은 곡들이 모두 각각 하일라이트 부분이 아니니까요. 그냥 가볍게 감상하면 될 것 같아요. 

창작은 고통스럽고 힘든 작업이죠. 비슷한 게 널려진 세상에서 무언가 새로운 걸 만들어 내는 게 쉬울리 없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정리하자면 이 정도쯤 될까요?

  • 환경이 열악한 요즘에도 명곡은 여전히 나온다.
  • 표절에 대한 대중들의 수군거림은 단순히 같은 코드웍 혹은 단순히 같은 멜로디에서만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 만약 창작자들이 무엇엔가 누군가엔가 영향을 받았다면, 더 나아가 그것의 정수를 인용하고 싶다면 반드시 원작자를 표기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