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edia & world/mass media

10만 안티 그리고 문보살

저도 문희준이 출연한 황금어장의 무릎 팍 도사 - 문희준편을 봤습니다. 2007년의 마지막 게스트라고 하던데, 무릎 팍 도사 측에서 보면 연예인/유명인들의 고민해결이라는 프로그램 성격에 딱 들어맞는 게스트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보통의 경우 10만 안티라는 표현을 쓰는 건 웃기려는 의도가 있는 거지만 문희준의 경우는 좀 다르죠. 디시인사이드오인용의 연예인지옥을 통해 그를 씹어댄 사람만 해도 충분히 10만은 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의 공공의 적이었죠. 오이만 3년, 레드제플린이 누구죠 같은 주옥같은 어록도 엄청나게 많고, 그 유명한 뷁 (브레이크, break)과 특유의 표정 캡쳐는 디시의 필수 합성요소였으며 사실상 디시를 키워낸 일등공신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을 정도니까요.

그가 나름대로 조용히 군대를 가서 제대를 얼마 남기지 않을 때 즈음부터 해서 여론이 바뀌었습니다. 그가 비교적 묵묵히 군생활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간혹 나오는 기사 속 사진에서 그는 살도 적당히 빠져 있었고, '군대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는 인터뷰를 했으며 이게 디시 사용자를 비롯한 안티들의 마음을 돌린 게 아닐까 싶어요. 결국 그는 무뇌충, 문돼지에서 문보살, 문병장으로 새로 태어났죠.

황금어장 방송 이후로 여러 블로그에서도 무뇌충에서 문보살로 거듭 태어난 문희준을 격려하고 그를 비난했던 과거를 반성(?)하는 글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내가 느껴지는 것은 딱 한 가지였습니다. 바로 '왕따'. 학교에서 왕따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문희준이 무뇌충이 되는 과정과 비슷한 것 같아요.

사실 대놓고 '네가 록 음악에 대해 뭘 알아' 라든지 '어디 댄스가수가 록을 한다고 설치냐'며 록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던 일부 (자칭) 록 애호가들의 과격한 편견이 단초가 되었겠지만 그게 한 사람을 완전히 가지고 노는 정도로 진화시킨 건 결국 익명의 인터넷 사용자들이었거든요. 집단 폭력을 모르는 척 하는 정도가 아니라 팔을 걷어부치고 동참한 것이죠.

공부를 잘 한다고, 조금 특이하다고 혹은 뚱뚱하다고 무조건적으로 린치를 가하고 끝까지 그걸 견뎌내면 '야, 장난인거 알지?' 툭툭 털며 쿨한 척 은근슬쩍 없던 일로 하는 요즘의 학원폭력과 똑같지 않나요?

혹은, 스승이 제자에게 비정상적인 방법까지 동원하며 이리저리 억지로 고생을 시키다가 제자가 모든 비합리적인 것들까지 묵묵히 받아내며 견뎌냈을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제자'로 인정해주는 도제 시스템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요. (물론 여기서 제가 이야기하는 포인트는 도제 시스템이 아니라 비합리적인 요구나 비정상적인 방법이죠. 군대를 다녀와야 사람 된다는 발상이 하나의 예가 될 수 있겠죠.)

어쨌거나 문희준은 인고의 시간을 보낸 끝에 무뇌충에서 문보살로 초고속 승급(?)을 했으니 다행이랄까요? 하지만 우리네 마음 한 곳에서는 이미 또다시 제2의 문희준, 제3의 문희준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닐까하고 생각하면 좀 오싹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