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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ly cinema/talk about movie

무간도와 디파티드 이야기

무간도, 無間道, Infernal Affairs
디파티드, The Depar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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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간도를 처음 봤던 기억이 난다. 후배가 엄지 손가락을 치켜 들며 정말 재밌다고 해서 그 후배랑 같이 봤는데 초중반부까지 내용이 살짝 이해되지 않았다. (그렇다 나는 바보다 -_-) 물론 후배가 빌려온 DVD를 술을 좀 한 상태에서 봤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고, 내 눈에는 양조위의 어린 시절을 맡았던 배우는 유덕화를 닮았고, 유덕화의 어린 시절을 맡았던 배우는 양조위를 닮았다고 느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것 말고도 기억하는 건 바로 (기존의 홍콩 느와르에 비해) 극의 진행이 참 빠르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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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징악을 중요시한다는 홍콩의 정서 때문에 만들어졌다는 또 다른 엔딩까지 모두 보고 나서 "잘 만들었네- 재밌다- 근데 난 이 엔딩이 낫네-" 라고 스치듯 대화한 다음, 한참 지나 다시 본 <무간도>는 그렇게 건성으로 말할 영화가 아니었다. 가오로 똘똘 뭉친 과거의 홍콩 느와르 팬들에게 무간도는 예전 영화들에 대한 어설픈 패러디나 관습적인 반복 없이 예전의 영광을 다시 보여준 작품이었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영화 내용으로만 보자면 잊을 수 없는 그 쓸쓸한 눈빛의 양조위가 멋있었지만, 동시에 유덕화가 대단해 보였다. <메이드 인 홍콩>을 보면서도 "이런 영화를 유덕화가 제작했어? 와- 정말 대단하다!!!" 했던 기억이 나는데, 이 영화의 제작자도 유덕화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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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간도>의 대대적인 성공으로 인해 2편과 3편이 제작된다는 소문을 듣고 난 한참 후에야 2편 <무간도 2 - 혼돈의 시대>를 보게 되었다. 역시 처음 보고 난 다음에는 살짝 실망 아닌 실망을 했다. <무간도> 1편의 매력 중 중요한 요소를 차지하는 양조위(와 유덕화)가 주인공이 아니라 황추생 (황국장)과 한침 (증지위)가 얽힌 사연이 주를 이루는 영화였기 때문이다. 그렇다. 2편이 1편의 프리퀼이었던 것이다. 갑작스럽게 제작된 시리즈의 두번째 편을 이렇게 평범하지 않게 만들다니! 물론 영화 자체로도 재밌다.


그러고 난 다음 역시 한참을 지나 시리즈의 마지막 영화인 <무간도 3 - 종극무간>을 봤다. 그런데, 이 영화는 참 특이했다. 그래도 명색이 홍콩 느와르의 새 장을 연 시리즈의 마지막 영화의 장르가 느와르도 아니고, 액션도 아닌 싸이코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유덕화가 달리 보였다. 결국 이 <무간도> 시리즈의 주인공도 유덕화가 연기한 유건명이 아닌가. 이 영리한 제작자 겸 배우라니. 박수 짝짝짝 쳐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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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나서 한참 후에 헐리우드에서 리메이크한다는 소문이 들려왔는데 제작자는 브래드 피트에 감독은 마틴 스코시즈라는 것이다. 브래드 피트가 직접 주인공 중 한명을 연기했으면 좋겠다는 기대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들려오는 캐스팅 소식도 대단했다. 디카프리오, 잭 니콜슨, 맷 데이먼, 마틴 쉰, 마크 웰버그…


게다가 간간히 공개되는 촬영장 사진이라든지 진행 상황도 들뜨게 만들었다. 특히 마틴 스코시즈는 원작인 <무간도>를 보지 않았다는 소문이 제일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자면 스크린으로 보지 않았을 뿐이다 (즉, 스크립트는 읽었다), 감독은 안봤지만 다른 스텝들은 봤을지도 모른다는 수사를 내가 잘못(?) 이해한 거였다. (그렇다 나는 바보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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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표현하자면 <디파티드>를 보고 난 느낌은 이렇다.

- <무간도> 1,2,3편의 설정을 고루고루 따와서 하나의 영화로 만들었다.

- 디카프리오는 좋은 배우지만 이 원작과 리메이크로만 보자면 양조위의 그 불안하고도 허무한 눈빛에 완패다.

- 결국 마틴 스코시즈는 원작과 비교할 때 에피소드들은 거의 비슷하지만 캐릭터와 주제라는 측면에서 전혀 다른 영화를 만들어 냈다.

- 개인적으로 <무간도>의 주제와 방식이 더 와 닿는다. 내가 보스톤 갱이 어떤지, 아이리쉬 갱이 어떤지 어떻게 알겠나. 그리고 사실 죄를 지은 사람들이 무간지옥을 헤맨다는 내용은 '구체적인 역사'라는 관점에 비해 더 보편적이다.

- 영화의 결말도 참 헐리우드식 느와르다. <무간도>가 차별시켰던 걸 다시 원점으로 돌려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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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파티드>를 보고 난 느낌을 더 짧게 줄이면 이렇다.

<디파티드>는 <무간도>에 완패.
(물론 마틴 스코시즈의 갱스터 3부작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완패'라는 단어가 전혀 적절치 않지만)

결국 <디파티드>를 본 날 밤, 나는 <무간도> 시리즈 3편을 전부 다시 보게 되었다. 그걸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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